1975년 경주에서 가장 큰 대형 무덤, 두 무덤을 연결한 쌍릉이 발굴됐다. 이 쌍둥이 무덤 중 남쪽 것인 황남대총 남분을 발굴했을 때 나온 봉황모양 유리병(국보 193호)은 전형적인 로마 시대의 대롱불기법으로 만든 유리 물병이다.

우리 조상 동이족 사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은 위(魏)·촉(蜀)·오(吳) 세 나라가 정립한 대륙의 삼국시대(220~280)에 관한 역사서 중 동이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이 원래 ‘금, 은보다 유리를 귀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신라 5세기 눌지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신라 왕릉에 묻혀 있던 봉수형(봉황모양) 유리병을 보면, 유리 물병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던지 금실(금철사)로 부러진 손잡이를 수리해놓은 상태로 되어 있다. 이 유리병은 지난 수십년 간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로마 유리기와 봉수형 유리병을 10여년 이상 연구해 온 경북대 박천수 교수는 “봉황모양 유리병은 100% 로마의 유리병”이라고 했다. 그 당시 로마에서는 유리그릇을 로마 본토, 시리아,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로마 식민도시 쾰른(독일) 등 4군데에서 만들었는데, 박 교수는 “신라에 들어온 유리그릇은 시리아에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기원전 2세기 초기 철기시대부터 우리 문화에서는 이미 유리대롱옥 등 유리 공예품 제작 기술이 있었음에도, 신라인들은 수입 유리그릇을 소중하게 여겼다.

현재까지 발굴된 10기 의 신라 왕릉급 무덤에서는 30여점의 유리그릇이 출토되었다. 우리 역사에 신라 왕릉급 무덤은 최소 100여분이 있다.

“5세기 그 당시에 북위나 송나라에서는 신라만큼 유리그릇이 없었다”는 게 박천수 교수가 연구 결과 내린 결론이다. 북방 초원로 실크로드를 통해서 우리 한반도까지 서양 유물이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로마 유리가 실크로드를 통해서, 해상, 오하시스, 그리고 초원로를 통해서 동아시아로 들어왔는데, 박천수 교수는 신라 황남대총(98호분) 남분에서 발견된 로마 유리그릇이 초원로를 통해서 왔다는 결적적인 증거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그물무늬 유리잔 망목문배와 카자흐스탄(Kazakhstan) 카라-아가치(Kara-Agachi) 고분에서 나온 유리잔을 비교해보면 두 유물의 그물 무늬 디자인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실크로드 동쪽 신라 이야기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