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축제가 끝났다. 5일 동안 서울극장과 아트선재센터에는 모처럼 한국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를 가졌다.
영화가 끝난 뒤 마치 처음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처럼, 국제영화제처럼, 시네마테크처럼 감독은 관객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35편의 장편 상업영화가 참가했다. 어떤 제한도 없었다. 지난 1년간 만들어져 국내 개봉된 영화를 모두 한번씩 상영했다. 이상할 것도 없다.
`관객과 호흡하는 우리 영화 축제의 장’, `더 넓게, 더 깊게 한국영화보기’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니 흥행에 참패한 졸작이든, 볼 사람은 다 본 영화든 다 참가하는게 맞다.
이미 비디오로 나오고, TV에서까지 방영을 한 영화라고 다시 못볼 것도 없다. 더 넓고 깊게 보자는데는 할말이 없다. 축제가 이런 방향을 선택한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영화계는 오래전부터 소위 신구, 보수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져 있다. 그 돌은 너무나 깊어 영화진흥위 구성을 놓고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젊은 영화인이 영화인협회를 거부하고 영화인회의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영화축제란 것도 사실은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영화인이 화합하는 첫 잔치가 됐다. 그들은 모처럼 축제 마지막 날(10월27일) 을 `영화의 날’로 맞춰 자리를 함께 했고 춘사영화제도 함께 치렀다.
젊은 영화인은 노배우 장동휘씨에게 춘사영화예술인상을 안겨 어른 대접도 했다. 한국영화축제는 `한국영화의 지방관객 저변확대’라는 또하나의 명분을 걸고 내년부터는 지방도시를 돌겠다는 것이다.
이런 거창한 구호와 포부에도 불구하고 첫 한국영화축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한편의 영화에 겨우 20여명의 관객. 참여를 위해 관객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상도 내놓고, 경품도 내걸었지만 썰렁했다.
삼천 영화인이라는 소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영화인이 선정한 영화상을 위해 상영관마다 마련한 투표함은 텅 비어있었다. `매회마다 40세 이상 선착순 50명은 공짜’, `1년 동안 사용한 한국영화 입장권 3장을 가져오면 무료’, `입장료가 절반(3,000원)’라는 유혹도 소용 없었다.
흥행에 참패한 졸작 `해변으로 가다’, `송어’ 등이 입장료가 비싸서 관객이 외면한 것은 아니다. 또 조금이라도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심심할 때나 영화를 찾는 사람이라면 `주유소습격사건’을 극장이나 비디오, 아니면 TV로 봤을 것이다.
그래서 `쉬리’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에 강제규 감독조차 의아해했다. 류승완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250여명이 몰린 것은 예상 밖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영화축제가 가야할 길을 말해준다.
이 영화는 저예산독립영화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직배사와 몇몇 한국메이저 배급사의 자기 영화틀기에 밀려 서울 한극장에서 개봉했다.
그래서 미쳐 못본 사람도 많았다. 한국영화축제가 상영기회, 관람기회를 다시 한번 준 셈이다. `플란다스의 개’나 `춘향뎐’도 흥행에 참패하고 난 뒤늦께야 좋은 평가를 받아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영화축제를 이런 작품들을 다시 깊게 볼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소나 말이나 다 있다고 화합은 아니다.
춘사영화제와 함께 한다면 후보작을 다시 보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돈도 적게 든다. 이번 축제에 쓴돈은 2억5,000만원. 그 중 1억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영화단체 지원사업금을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CJ엔터테인먼트에서 얻어냈다. 이런 축제는 남의 돈으로 하기보다는 영화인 스스로 마련하는게 더 아름답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주머니는 꼭 잡그고 있다. 마치 영화가 무슨 특권사업, 국민봉사사업인 것처럼 세금을 마구 끌어다 쓴다.
그 돈으로 자신의 허세와 이익을 위해 가능하면 이것저것 크게 잔치를 벌인다면 그들이야말로 한심한 문화얼치기나 문화를 가장한 집단이기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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