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레이 전 엔론 회장이 청문회에 출두는 하지만 수정헌법 제5조에 따른 묵비권을 행사할 경우 그는 가장 ‘미국적인’ 이 제도를 들먹이는 명사 대열에 합류하는 최근의 인물이 된다.
통상 ‘(수정헌법) 제5조에 따른 변론’(Pleading the Fifth)으로 알려진 이 행위는 당사자가 재판이나 청문회에서 자신의 증거 제시나 증언이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여길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일각에서는 다른 9개 수정헌법 조항과 함께 미국 연방헌법의 권리장전을 구성하는 제5조가 명백한 범법행위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는 면죄부라 비난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엔론의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에서 엔론 감사역을 맡았던 데이빗 던컨이 연방하원 청문회에 출두, 진실을 캐려는 의원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에 입각해 증언을 거부했던 것이 최근 사례. 아더 앤더슨이나 엔론의 다른 직원도 던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던 프로풋볼 스타 O.J. 심슨의 살인혐의 재판에서 검찰측 주요 증인이었던 LAPD 수사관 마크 퍼먼도 수사중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내용을 담은 비디오가 언론에 공개된 후 재판에서 문제가 되자 수정헌법 제5조를 꺼내 들었다. 당시 심슨이 유죄평결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퍼먼이 3번이나 "제5조…" 운운하며 증언을 거부, 배심원단을 분노시키면서 자신의 신뢰도도 실추시켜 검찰측 입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1986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이란-콘트라 스캔들’에서 총대를 멨던 올리버 노스 미해병중령도 수정헌법 제5조를 들어 이 스캔들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증언을 거부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시작된 이란 주대 미대사관 인질사태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해결하는 와중에서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이익금을 니카라과 사회주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군에 군자금으로 제공, 레이건 대통령을 탄핵위기까지 몰고 갔던 사건이다.
"변호사의 자문에 입각, 본인은 (의회에 대한 무한한) 존경 속에서 유감스럽지만 연방헌법이 보장하는 본인의 권리에 따라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합니다." 당시 노스 중령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갖가지 의회 청문회에 출두할 때마다 되풀이했던 말로 수정헌법 제5조를 들먹이는 유명한 문구로 남았다. 노스 중령은 이 사건으로 3년 징역형과 집행유예에 처해지고 군복을 벗었으나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사면된 후 연방 상원의원 선거까지 출마했다.
1950년대 미국판 반민특위 냄새를 풍겼던 조 맥카시 연방 상원의원의 ‘비미국적 행위 위원회’에 출두 당했던 많은 인사들도 수정헌법 제5조를 방패로 내세웠다. 맥카시 의원이 "미국이 ‘붉은 위협’에 휩싸여 있다"며 칼자루를 마구 휘둘렀던 마녀사냥식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시절이었다.
세칭 ‘할리웃 10인방’이 출현한 것도 이 때. ‘할리웃 10인방’이란 공산당원으로 몰려 ‘비미국적 행위위원회’에 소환돼 수정헌법 제5조로 박해를 피하려 했던 할리웃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10명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들 10인방의 행위는 위원회 모독죄로 불법화돼 모두 철창신세를 졌다. 오늘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수정헌법 제5조(전문)---
누구도 사형 또는 중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에 대한 답변을 강요당할 수 없다. 대배심의 고발 또는 기소하는 경우나 전시 또는 공공이 위험에 처한 시점에 육·해군이나 민병대에서 발생한 사건은 예외이다. 누구도 동일한 범죄로 생명이나 신체의 위협에 두 번 놓일 수 없다. 누구도 형사사건에서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인이 되도록 강요될 수 없다. 누구도 적법한 절차 없이 생명·자유·재산을 뺏기지 않는다. 공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적당한 보상 없이 사유재산을 뺏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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