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방문중인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첫 방문지 카사블랑카에 도착했을 때 모로코 국왕은 "예루살렘에 먼저 갈 것이지, 여기는 왜 왔습니까"라고 핀잔을 주었다.
모로코 국왕의 말에는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더 깊은 이면에는 미국이 국내 유대인들의 로비에 의해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지원하고, 이슬람 세력 전체를 적대시하고 있다는 중동지역의 불신이 깔려 있다.
미국의 중동정책이 유대인과 밀착돼 있다는 의혹은 아랍권에서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유럽인들 마음 속에 은연중에 숨어 있는 논리다. 그러면 여기서 미국의 대외정책이 유대인에 의해 좌우되는가 하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국 사회의 주요 포스트에 유대인들이 대거 진출해 있으며, 지난해 9.11 테러사태 이후 유대인들이 부상하고, 아랍계가 숨을 죽였던 사실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 내 유대인은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미국 사회 상층부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방부에선 폴 월포비츠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차관, 리처드 펄 차관보가 유대인이고, 정계에서 조지프 리버만, 척 슈머, 존 코자인 상원의원 등이 그렇다.
경제계에는 그 비율이 더 높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시티그룹의 샌포드 웨일과 로버트 루빈 회장, 메릴린치의 데이빗 코만스키 회장,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 회장이 유대계고, 골드만 삭스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모여서 세운 투자은행이다. 미국 400대 부자의 23%, 50대 부자의 36%가 유대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언론은 유대 가문의 소유이고, 하버드대 로렌스 서머스 총장, 경제학자 폴 사뮤엘슨도 그 민족이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민족이 독일에서 학살되었던 역사를 영화로 만들었다.
올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앞서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존 내쉬 교수가 반유대주의자라는 소문을 경쟁사가 흘렸다는 내용은 할리웃이 유대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9월 테러 이후 뉴욕시장 선거에 유대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당선되고, 아랍인의 피가 흐르는 포드 자동차의 자크 내서 사장이 물러난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격한 아랍 이슬람 세력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특정 민족의 로비에 의해 움직이는가 하는 점이다. 유대인 단체인 전미 이스라엘 공공문제협회(AIPAC)가 대단히 강력한 로비단체임은 워싱턴 정가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유럽보다 이스라엘에 가까운 대외정책을 채택해 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은 대외군사 원조액의 3분의2에 해당하는 30억달러를 매년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 중동정책이 언제나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 이뤄졌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예를 들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 내 유대인의 반대를 물리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조기경보기(AWACS)를 판매했고,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유대인 정착촌을 만드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당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유대단체의 로비를 불쾌해 하면서 "에이, 유대인놈들, 우리(공화당)에게 표도 주지 않으면서…"라고 욕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주지사 시절에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가장 좁은 국토 길이(9마일)가 텍사스 부잣집의 드라이브웨이보다 좁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스라엘에 동정적이 됐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그는 중동 평화의 선결 조건이 이스라엘군 철수라는 점을 인식하고, 과거의 동정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특정 민족의 로비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동 사태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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