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좋은 물건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일사불란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의 뉴앙스도 비슷하다. 좋은 재료가 있어도 꼭 사용해야할 때 사용하지 않으면 애당초 재료가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워싱턴주의 한인 숫자는 통상 12만 명으로 친다. 지난 2000년 인구조사에서 파악된 공식 숫자보다 3배 가량 많다. 이들 중 대다수가 시애틀-벨뷰-페더럴웨이-타코마 등 퓨젯 사운드 일원에 모여 산다. 한국마켓에 가야만 한인을 만날 수 있던 건 옛날이고 이제는 심심 산 속에서 등반하다가도 한인을 꼭 만날 정도로 체감 숫자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꿰지 않은 구슬처럼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무소부재(無所不在)인 한인들이 정부 당국의 눈에는 소수중의 소수로 비친다. 한인들이 많이 보이지 않을뿐더러 이들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한인사회 내에선 목소리가 너무 커서 걱정인 인사들도 주류사회를 향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자고로 미국 사회에서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가장 쉽고 정확하게 내는 방법은 투표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한인들이 본국 정치판에는 관심이 지대하면서도 미국의 정치나 선거는 남의 일처럼 무관심하다. 한국내 민주당의‘친노·반노’계파는 줄줄이 엮으면서 워싱턴주 민주당의 신호범 상원의원이 재출마한 것을 모르는 한인이 꽤 많다.
‘이민 와서 먹고살고, 애들 교육시키기 바쁜 데 어느 틈에 정치에까지 관심을 갖겠냐’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모르시는 말씀이다. 이는 마치‘당장 밥 지을 시간도 없는데 언제 씨뿌려 농사를 짓느냐’며 공짜로 주는 밭을 마다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정치를 잘 이용하면 먹고사는 것은 물론 자녀교육에도 크게 이익을 볼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라서 국민(시민권자)이라고 모두 투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로서 등록을 한 시민권자만 투표용지를 받는다. 문제는 시민권 시험에 합격해서 어렵게 미국인이 된 한인들 중 소수만이 유권자 등록을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인 노인들의 경우, 투표지의 내용도 읽을 수
없을 텐데 유권자 등록은 무엇 하러 하냐며 막무가내이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잘 모르시는 말씀이다. 머지않아 한글로 된 투표지가 나올 전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신 의원의 이름이‘Paul Shin’이 아닌‘폴 신’으로 기재돼 영어를 모르는 한인 유권자라도 그의 이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이미 킹 카운티에서는 올가을 선거에 중국어로 된 투표지가 나오고 히스패닉 유권자가 많은 야키마 등 다른 3개 카운티에서는 스페인어로 된 투표지가 준비되고 있다. 이미 한글로 된 선거관련 팜플렛은 나와 있
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시애틀 지역에서 한인유권자 등록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9월 초 예비선거를 앞두고 한인유권자 연합(KAVA)이라는 신설 단체가 2주전에 이어 이번 주말에도 각 지역 한국마켓 앞에서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 지역 한인사회에서 있었던 어느 캠페인보다도 의미 깊고 실속 있는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다.
LA지역 한인사회에서는 이미 80년대 초 KAVA가 결성돼 한인유권자 등록의 효시를 이룬 뒤 한미연합(KAC)이라는 1.5~2세들의 정치단체로 탈바꿈, 지금까지 5만여명의 유권자를 등록시켰다. 일본 커뮤니티는 이미 오래 전에 일본시민연맹(JACL)이라는 전국적인 단체가 결성돼 표를 바탕으로 주류사회에서 세를 과시해 오고 있다.
표는 영어로 보트(Vote)이다. 이 보트야말로 한인들이 이민생활의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는 데 꼭 필요한 보트(Boat)가 아닐 수 없다. 쓸모 없이 흩어진 12만개의 구슬이 아니라 실에 꿴 값비싼 보배가 될 수 있도록 한인 시민권자들이 모두 유권자 등록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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