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철이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원생까지 새 학기 준비에 바쁘다. 올해는 각 지역 교사들이 개학에 맞춰 파업을 들먹이고 있어 학부모들도 마음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공부는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여는 수단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동경대 노구치 유키오 교수(56)도 일생을 통해 올바른 공부방법으로 지식을 넓힌 사람이 행복을 최대한 구가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부하는 사회의 중요성을 역설한‘초(超) 공부법’(1996)을 저술했다.
이 책은 120만부 이상 팔려나가 대형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니라‘공부를 하면 반드시 보답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유키오 교수의 말에 감동을 받았었다. 그가 말하는 공부하는 사회는 모든 공부가 대학 입학시험으로 종결되는 한국의‘학력사회’와는 판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도산 안창호도 독특한 교육관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학생이란 무엇이뇨? 미래의 무기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한국 학생은 누구이뇨? 조선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미래의 무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훈계했다. 일제치하의 한국 학생들에게 공부가 일신의 영달이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도산의 교육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울대의 박성현 자연대학장
은“기초학문의 붕괴, 과학의 공동화, 신입생의 학력 저하 등 고급 과학인력의 씨가 마르고 있는데도 대책이 없다. 교수들이 직접 중·고교 과학교실에 나서야 할 판”이라고 탄식했다. 금년도 서울공대와 자연대 등록율은 평균(86.6%)에도 미치지 못해 이공계 고사위기라는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재미있는 과목, 학점 따기 쉬운 학과로 몰리기 때문이다.
일본 게이오 대학의 도리히 야스히코 총장이 몇년전 서울에서‘교육개혁과 경제 발전’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한국 교육실패의 세 가지 요인을 지적했다. 첫째, 자녀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표를 가르치지 않은 점, 둘째 국가의 주인공이라는 비전을 심어주지 못한 점, 셋째 부모세대가 겪은 고난을 가르치지 못한 점이 그것이다. 편하고 쉽게만 살기에 익숙해진 자녀들은 심성이 빗가고 세상에 적응할 훈련이 돼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젊었을 때 한국에서‘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라는 영화 주제가가 크게 유행했었다. 가수 겸 배우인 도리스 데이가 제임스 스튜어트와 공연한 스릴러‘비밀을 아는 남자’(1956년,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마지막 부분에서 피아노를 치며 부른 노래였다. 케 세라 세라의 영어 타이틀은‘Whatever will be, will be’이다. 장래는 어차피 정해진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 엄마에게 물었지요/ 나는 장차
어떻게 될까요/ 예뻐질까요? 부자가 될까요?/ 엄마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케 세라 세라, 운명은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는 것,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아니란다...’라는 가사였다.
미래에 지나치게 집착 말라는 엄마의 충고가 한국에서는 마치‘될 대로 되라’는 투의 자포자기로 오역됐다. 젊은이들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 도전하고 극복하기보다는‘케 세라 세라’를 읊조리며 회피했다. 도산이나 유키오의 교훈대로 웅지와 끈기를 품기보다는 일신상의 부와 기회주의적인 명예를 추구했다. 그 병폐가 오늘날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들은 가치관 가운데 부귀영화를 최하위로 꼽았
다. 부귀영화는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 돈벌이 잘되는 과목을 전공해서 부귀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개학 철을 맞은 학부모들의 자세는 케 세라 세라 식의 자유방임이어서는 곤
란하다. 그렇다고 부모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특정 학교나 전공과목을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보다는 삶의 진정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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