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침을 여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인간의 남성들과 자주 사랑에 빠졌다. 그 여신은 소위 ‘꽃미남’만 보면 홀딱 반해서 유괴도 서슴지 않으며 연인으로 삼았고, 그중 한명인 티토노스와는 결혼까지 했다.
에오스는 인간인 남편이 유한성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우스에게 영생을 부탁했다. 아름다운 남편과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서였다. 제우스도 그 소원을 들어주어서 티토노스는 여신과 불멸의 삶을 즐기는 행운의 남성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후 에오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싱싱하던 티토노스의 머리가 희어지고 피부는 꺼칠해지면서 주름투성이가 되었다. 제우스에게 영원한 생명과 함께 영원한 젊음도 같이 부탁했어야 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티토노스는 더 이상 여신이 사랑을 나누고 싶은 꽃미남이 아니었다. 에오스는 늙어 껍질밖에 남지 않은 티토노스를 구석방에 가두어 버렸다. 구석방에서는 매미 소리같이 힘없는 목소리만 간간이 새어나오다가 결국 티토노스는 매미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불멸은 인간의 오랜 숙원이지만 인간이 생명의 한계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늙음이라는 또 다른 장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리스 신화이다.
무한대로 늘어난 수명이 오히려 멍에가 되어버린 티토노스의 운명이 21세기 우리들의 현실이 될 전망이다. 수명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 늘어나고 있다.
며칠전 60대의 한 커뮤니티 인사와 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거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한동안 투병생활을 했던 분인데 완쾌되어 건강한 모습이었다. 사회학자인 그는 말했다.
“옛날 같으면 삶을 포기했을 환자들도 지금은 거의 다 살아납니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덕분이지요. 수명이 계속 늘어나서 지금 40대 이하 연령층은 100살까지 살 준비를 해야 할겁니다”
현재 미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백인 기준으로 여성 79세, 남성 76세이다. 그러나 평균수명은 유아사망, 젊은 나이의 돌연사등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50대, 60대의 건강한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이보다 훨씬 길다. 예를 들어 현재 65세 여성의 기대수명은 84세, 남성은 81세이다. 웬만하면 90을 바라볼 나이를 산다는 말이다. 실제로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연령집단은 85세이상 연령층이다.
센서스 연령분류에서 최고령(oldest-old)으로 분류되는 85세이상 연령층 인구는 지난 1982년에서 1999년 사이 93%가 증가했다. 1990년 센서스에서 2000년 센서스의 10년간 전체인구는 13%가 증가한 데 비해 최고령 인구는 37%가 증가했다. 이 연령층은 사망률이 계속 하락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나이를 좀 더 높여 100세 이상 인구를 보면 증가곡선은 더 가파르다. 1950년 2,300명이던 1백살 이상 노인은 90년도 센서스때 3만7,000명으로 늘었다가 지난 10년간 다시 2배가 늘었다. 2020년이면 평균 기대수명이 100살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학자들도 많다. ‘100살’이 소망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은퇴후 근 40년의 삶은 대충 살수 있는 세월이 아니다. 수명과 관련, 이제 정반대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더 이상 “운동하고 몸보신해서 오래 살자”가 아니다. 100살을 전제조건으로 젊어서부터 그 긴 세월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사회라는 여신에 버림받고 구석방에 갇힌 티토노스같은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독립할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심리적, 육체적, 물질적 독립이다. 남의 도움없이 몸을 움직일수 있는 건강, 먹고 살만큼의 돈, 망망한 시간의 바다를 채울 수 있는 일, 노년의 고독을 같이 이겨낼 친구들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한때 백살 노인들을 ‘보석’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들은 ‘화석’으로 불린다. 숫자가 너무 늘어 사회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노후에 ‘화석’이 될 것인가,‘보석’이 될 것인가. 우리 앞에 놓인 숙제이다.
권정희 편집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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