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요”
다운타운 보석가 힐스트릿에 가면 ‘시계방 아줌마’를 만날 수 있다. 시계 수리가 큰 힘쓰는 일도 아닌데 여자가 한다니 타인종들도 생소한가 보다. “한참 시계를 고치다 옆얼굴이 간질간질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면 어째서 여자가 이 일을 하는지 신기하다며 매달려 구경하는 타인종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금새 단골손님 삼게 되곤 하죠”
시계 아줌마로 통하는 ‘김스 시계수리점’ 김연휘(52) 씨의 목소리는 언제나 밝고 힘차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아진다. 고객은 주로 시계상을 하는 도매상인들, 타인종이 80%, 한인이 20%정도란다.
미국에 오자마자 부부가 함께 시작한 이 수리점을 오늘날까지 13년 동안 한자리에서 지켜왔지만 그 중 반은 남편의 투병 덕택에 김씨 혼자 꾸려온 셈. 1977년 ‘사진신부’로 브라질에 가 만난 남편 김성근(56) 씨와 함께 현지에서 시계점을 경영하면서 익혀둔 가게운영법과 9년전 다운타운 시계 부속상 ‘호빅스 워치 서플라이’에 근무하며 배운 수리기술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건강하던 남편이 지난 1995년부터 간경변증을 앓기 시작, 네 식구의 생업은 모조리 김연휘 씨 몫이 됐다. 간병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낮엔 가게에 엎어져 잠들어 손님이 깨워도 모를 지경으로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돼 장례준비에 들어갔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지금은 하루하루가 천국 같다. 곧 떠나갈 사람으로 마음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이 1997년 USC카운티 병원에서 간이식수술을 받고 기적처럼 살아난 것.
아직도 남편은 당뇨와 혈압 합병증세로 완쾌된 몸은 아니지만 “집에 가면 대화하고 가게 일도 조언해주는 든든한 남편이 살아 있지요, 샘(25)과 모니카(23) 효자·효녀로 잘 자라줬지요, 밤엔 편히 잠만 잘 수 있으니 더 바랄 게 있나요” 손꼽아 말하는 김씨 얼굴엔 행복이 가득하다.
나흘만 지나면 결혼 26주년 기념일, 김씨는 “6년 전 남편이 사선을 넘나들며 절망했을 때 ‘25주년 기념일엔 꼭 함께 하와이 여행을 떠나자’는 말로 희망과 용기를 줬었는데 지금 이렇게 곁에 살아 있다니 꿈만 같다”며 회상에 잠겼다.
매일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일터로, 병원으로, 집으로 출퇴근하길 6년, 그럼에도 피곤을 모르는 듯 늘 기분 좋게 명랑한 목소리로 “감사한 마음이 비결”이라고 귀띔한 김씨는 “먼 훗날의 희망을 꿈꾸지 않아요. 날마다 새벽기도에 나가 오늘 당장 남편이 곁에 살아 있음을, 또 이렇게 일할 수 있음을 감사드리지요. 돈은 많이 못 벌지만, 뭐… 빚 안지면 부자 아닌가요”라고 씩씩하게 말하는 김씨는 오늘도 다른 환자와 보호자에게 도움말을 주느라 어깨엔 수화기를 끼고 손과 눈은 시계를 고치느라 분주하다.
그간 김씨가 수술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남편의 수술자국을 보여주며 용기를 북돋우거나 간병부터 식사준비, 병원선택과 의사소개 까지 힘닿는 대로 도와온 것만 18가족에 이른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지는 게 아니더군요. 이 순간에도 방법을 몰라 쩔쩔매며 절망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지난날 우리 가족이 애간장 태우며 깨달은 방법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김스 시계수리점 (213)614-0134
<김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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