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권의 공통점을 하나만 든다면?”이라는 질문의 정답 중 하나는 “뇌물이 공공연히 횡행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뇌물이라-. 개방과 동시에 서방세계에 노출되기 시작한 사회주의권의 이 뇌물 수수 현상은 처음에는 의외로 느껴졌다.
지금은 가방색이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베트남 호치민시의 교통경찰들은 누런 가죽가방을 하나씩 메고 다녔다. 티켓발부에 필요한 장비 등이 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 곳에서 오래 산 관광 가이드에 따르면 경찰봉으로 툭툭 가방을 치면 가방에 뇌물을 갖 다 넣으라는 신호라고 한다. 걸린 쪽이나 받는 쪽이나 남의 눈을 꺼리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러시아 선교물량이 많은 한 교회 교인들은 한 때 모스크바에 갈 때면 공항통과가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짐 보따리라도 큰 걸 가졌다면 또 무슨 시비를 걸어올까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교회 행사 때문에 이민가방 100개 분량의 물자가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다? 이 때는 합심 기도도 기도지만 뇌물을 빼 놓으면 백약이 무효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도 몇 백 달러의 뇌물은 요령있게 사용돼야 했다.
몇 년전 북한에 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도 공공연한 뇌물과 촌지 관행이었다.
김일성대학 역사철학과라면 북한에서는 엘리트들이 가는 곳이다.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는 그 대학 출신의 20대 안내여성은 LA나 서울서는 볼 수 없는 순수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에다 무엇보다 똑똑함이 돋보이던 여성이었다. 그녀에게 우리 팀의 인솔자는 안내가 끝나자 솜씨있게 사례비를 찔러 줬다. 그 장면은 못 봤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 있다.
LA의 이산가족이 부탁해서 가져간 약 꾸러미를 부칠 때도 어김없이 성의를 보여야 했고,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친 듯한 인상의 지도원 동지에게도 미국서 간 방문단은 한 사람에 20달러씩을 걷어 준 기억이 난다. 일행이 20~30명 정도 됐으니 몇 백달러는 됐을 것이다.
이 정도 ‘인정’을 가지고 뇌물 운운한다면 뇌물에 대해 너무 교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외접촉이 이뤄지고 있는 북한사회 일각의 뇌물은 규모가 보통이 아니다. 미국 돈 1달러면 북한 돈 얼마 하는 식으로 단순 환율로 계산해서 달러화의 가치를 과신하면 망신당하기 쉽다.
성경도 돈만 있으면 갖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몇 년전 이야기지만 LA서 규모있는 사업을 하다 북경을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하던 모 인사는 성경 10권을 북한에 반입하는데 500달러를 썼다. 권당 50달러의 뇌물이 든 셈이어서 주위에서 성경 단가를 너무 올렸다는 지적을 들었다.
한 때 서방세계에 이름이 잘 알려졌던 북한 대외경제팀 고위관계자들이 하루아침에 무대 전면에서 사라진 것도 너무 많이 받아먹었던 것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5년간 비즈니스 관계로 북한을 자주 드나든 LA의 한 비즈니스맨은 갈 때마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푸념이었다. 비행기 삯과 호텔비 말고도 장부상에 기록하기 어려운 돈이 많다는 것이다.
헤어진 혈육을 만나기 위해 평양서 열리는 행사에 묻혀 가는 이산가족들은 그야 말로 봉이다. 미국서 주선해 준 쪽에도 몇 천 달러 단위의 수고비를 줘야 하지만 평양서 만나는 안내원들에게 쥐어줘야 하는 달러화의 단위는 갈수록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뇌물의 단가는 처음에는 북한을 찾은 미국등의 이산가족들이, 나중에는 북한과 접촉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이산가족과는 비교도 안되게 올려버렸다. 북한 취재를 한 일부 여유있는 언론들도 여기 포함 된다.
이런 풍토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지난해 지도자 동지가 큰 것 한 장을 받아 챙겼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통 큰 정치를 하시는 분인 만큼 뇌물 단위도 컸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민족화해나 평화도 뇌물성 뒷거래로 살 수 있다는 발상은 북한 못지 않게 뇌물이 관행화된 남과 북 사이였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희극적인 생각이 든다.
안상호<경제 부장>
sanghah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