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우리 식구는 두 번 떡국을 먹었다.
아침엔 시어머님 댁에 가서 세배를 드리고 차려주신 설음식을 먹었고, 오후엔 언니 댁에 가서 역시 푸짐하게 차린 설상을 받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마저 아침에 집에서 떡국을 끓였던 탓에 우리 식구는 하루 세끼 떡국을 먹어야했으나, 아무리 설날이라도 그런 미련한 짓은 하지 말자 해서 올해 나의 떡국은 생략하였다. 대신 잡채를 좀 하였고 약식도 만들어 보았다.
매년 설날에는 어디를 가도 비슷한 음식을 먹게 마련인데 올해는 마치 어머님과 언니가 짜고 하신 것처럼 다른 음식을 차려주셔서 더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께서는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 낸 떡국에 갈비찜, 생선전, 고보볶음, 고구마순나물, 김무침, 야채겉절이를 해주셨고 언니는 양지머리 국물로 떡국을 끓이고 영광굴비 구이, 새우튀김,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콩나물을 차려주었다.
언제까지 어른들이 차려주시는 설상을 받아먹어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설날은 아랫사람이 윗사람 찾아다니며 세배하고 덕담 들으면서 떡국을 먹는 날이니 만큼 당분간은 계속 뻔뻔스러울 예정이다. 오히려 두분이 연로하셔서 내가 설상을 차려야하는 날이 온다면 그 더욱 슬픈 일이 아닐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설음식을 양껏 먹고 출근한 다음날, 새해인사를 나누다보니 사람들이 떡국을 뭘로 끓여먹었느냐, 고기는 무슨 고기를 해먹었느냐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광우병 소고기 소동의 여파였다. 우리처럼 별로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너무나 의식하여 소고기를 완전히 메뉴에서 빼버렸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멸치국물에 떡국을 끓였다는 사람, 치킨 스톡에 끓였다는 사람, 닭고기와 생선으로만 설상을 차렸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대로 양지머리 육수에 고기잡채 해서 잘 먹었다는 사람도 있고, 소고기 요리를 해놨더니 식구중에도 남편은 먹는데 딸아이가 젓가락질을 안 하더라는 등 사람마다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얘깃거리가 됐다.
마켓 고기칸에 가보니 사람이 하나도 없어 썰렁하더라고 하기도 하고, 반면에 타운 구이식당에는 손님들이 여전히 바글바글하더라는 등 사람마다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광우병에 양성반응을 보인 단 한 마리의 소가 일으킨 반향치고는 참 대단하지 않은가? 미국의 2억명 인구중 광우병에 걸린 사람이 아직 단 한명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미농무부 관계자들은 미국산 소고기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며 현재 유통중인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퍼진 광우병 공포는 막기가 힘든 것 같다. ‘기분이 그래서’, ‘찝찝해서’ 안 먹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찝찝한 기분의 여파가 연말연시 대목시즌에 육류업계에 미친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이러한 광우병 소동의 이면에는 동물애호단체들과 오개닉 푸드업계, 채식주의 운동가들의 계획적인 선전이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회를 호재삼아 가뜩이나 불안한 사람들의 공포심을 마구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엊그제 나온 여론조사를 보니 미국인의 66%는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7%만이 광우병 파동이후 고기의 양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도 그냥 소고기를 전처럼 먹을 예정이다. 워낙 소고기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대뽀 하면 결코 지지 않을 정대뽀인 나는 아주 작은 가능성에 목숨 걸며 유난 떨거나 호들갑 떠는 일을 극도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편이다.
사스에 걸려 죽거나 광우병에 걸려 15년후 죽을 확률이 번개 맞아 죽을 확률보다 훨씬 낮은데도 불구하고 난리 브루스를 떠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대범한 일부 동료들은 어차피 죽을 인생, 15년쯤 후면 뇌에 구멍 좀 몇개 나도 괜찮을 것이라고 여유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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