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의 대표적 교회중 하나인 나성영락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일요일인 7일 열리는 LA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해 교계가 시끄럽다. 교인들에게 ‘주일성수’의 모범이 돼야 할 목회자가 주일 대예배 시간에 반바지 입고 거리를 달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과 분노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영락교회의 일요 마라톤 참가 결정은 아주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이들에게는 충격을 안겨줄 만한 ‘파격’이다. 교계 일부에서는 긴급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이 결정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주장의 요체는 “주의 날의 중심은 예배며 성수주일이야말로 기독교의 마지막 보루”라는 것이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 기독교인 됨의 기본이라는 데는 모두가 같은 뜻인 것 같다. 문제는 “무엇이 성수인가”라는 것인데 이번 일요 마라톤 논쟁도 성수의 의미와 정의를 둘러싸고 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영락교회 교인들이 마라톤 참가 후에 교회에 모여 축제를 겸한 예배를 갖는다니 성수가 좁은 의미에서 예배를 뜻하는 것이라면 마라톤은 전혀 문제거리가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라톤 참가 결정을 비난하는 교계 인사들은 “안식일에는 세속적인 일과 정욕적인 즐거움을 삼가야 한다”며 마라톤 자체를 주일에 삼가야 할 일의 범주에 넣고 있다.
이민생활의 특수성을 고려해 많은 목회자들이 겉으로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교인들의 주일 비즈니스 오픈이다. 일요일 비즈니스를 여는 것이 신앙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여부를 떠나 현실적으로 이날 비즈니스를 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꾸려가기 힘든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타운의 한 유명 가전업체는 ‘주일성수’를 내세우며 일요일 영업을 하지 않다가 경영난을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목회자들은 ‘안식일’과 ‘성수’를 내세워 일요일 비즈니스에 부정적이다. 이런 목회자들도 주일날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에 가 개솔린 넣고 일요일 문 연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입으로는 율법주의에 가까운 성수를 외치면서 이날 문을 연 비즈니스를 이용한다면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신학자는 “기독교인들 가운데 자기는 주일을 지키면서 고용인들은 일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꼬집으면서 한 예로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운전기사를 부르는 경우를 들기도 했다.
일요 마라톤에 비판적인 교계 인사들은 “예배를 드리는 것 외에는 다 속된 일”이라는 다분히 이원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지나치게 경직된 성·속의 구별을 벗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경직된 해석에는 자승자박과 자가당착이 따르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달음질과 상급에 비유했다. 그 비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데 마라톤만큼 좋은 신앙체험도 없지 않을까. 주일날 웬 마라톤이냐고 비난만 할게 아니라 그것을 신앙체험과 이웃사랑의 실천이라는 관대한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수긍하지 못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요 마라톤 논쟁에 대해 분열과 상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기자는 이런 논쟁을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논쟁은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고 열려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일요 마라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길게 늘어놓은 것은 다른 입장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논쟁의 확대 재생산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그동안 한인교계는 교리적인 논쟁에 있어서 상당히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신도들은 신도들대로, 목회자들은 목회자들대로 신앙적인 의문과 생각의 차이가 있어도 이를 겉으로 드러내 놓고 공론화 하는데 주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일요마라톤 논쟁이 앞으로 한인교계 내에서 다양한 논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성숙한 종교의 논쟁이라면 그 절차와 방식이 관용과 상호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조윤성<특집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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