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은행인 미국의 시티뱅크가 독일 최대의 은행인 도이체 방크의 합병을 추진하는가 하면 플릿뱅크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합병하는 등 세계는 은행들끼리 서로 먹고 먹히는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경쟁이 심한 금융계에서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에 한인들의 힘으로 세운 브로드웨이 내셔날 뱅크(BNB)가 18년 동안 한인사회의 금융센터로서 굳게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BNB는 1986년 브로드웨이에서 도매상을 하던 한인들이 만든 한인경제인협회가 모태가 되어 설립한 은행이다.
이 은행이 설립되기 전 이미 한국의 외환은행, 제일은행, 상업은행의 지점이 뉴욕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고 BNB와 같은 때 또 다른 한인은행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뱅크가 설립되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거나 다른 은행으로 바뀌었다. 또 10여년 전 한인은행으로 리버티 뱅크가 설립되었으나 현재 LA의 나라은행과 중앙은행이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BNB만 순수 뉴욕한인은행의 자리를 앞으로 계속 지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 BNB의 중심에 은행 설립 당시 주역이었고 그 후 18년간 은행
을 지켜온 정삼찬 행장(66)이 있다.
정행장과 BNB의 관계는 처음부터 뗄래야 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이다. 재일교포 출신인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 유솜에서 근무하다가 1966년 유학생으로 도미했다. 미국에서 회계학을 공부한 후 미국 CPA 회사에 3년간 근무하다가 그는 당시 다른 한인들처럼 뉴저지에서 잡화가게를 열었고 맨하탄의 브로드웨이로 진출, 1977년 뉴욕한인경제인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983년 경제인협회 회원들이 앞으로 한인사회의 경제 규모가 커질 것에 대비하여 신용조합을 만들자는 논의를 할 때 그는 신용조합이 아니라 은행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가 이런 제안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형이 이미 1964년 일본에서 은행을 설립하여 그 당시 경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도 은행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있었던 터였다.
그리하여 은행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은행추진위원회 발기인 17명이 선정되었고 정 행장이 위원장을 맡아 3년 반만에 은행설립을 인가 받았다. BNB는 1986년 9월 16일 자본금 400만달러로 브로드웨이 28가에서 영업을 시작했는데 정씨는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러나 그 당시 한인사회의 은행은 초창기였으므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BNB와 같은 해에 문을 열었던 한인은행 엠파이어 스테이트 뱅크는 3년간 은행장이 5번, 이사장이 6번 바뀌는 등 숱한 내분을 겪다가 FDIC에 의해 문을 닫았다. BNB도 엄청난 액수의 부실대출로 인해 한 때 위기에 몰렸는데 정씨가 1993년 행장직을 맡아 대출 현장을 답사하고 경영을 꼼꼼히 챙기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BNB는 정 행장이 경영해 온 지난 10여년 동안 몇 차례의 증자를 통해 덩치를 키웠다. 그 결과 현재 자본금 1,800만달러, 총자산 2억700만달러, 총예금 1억6,700만달러, 총 대출 1억5,200만달러의 규모로 자랐다. 그리고 뉴저지 포트리에 본점과 지점이 있고 맨하탄 5애비뉴와 6애비뉴에 각각 지점이 있다. 또 오는 6월에는 뉴저지 팰리세이즈 팍에 지점을 개설하며
금년 중 플러싱에도 지점을 설치할 계획을 하고 있다.
한인사회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BNB의 주력 상품은 소기업에게 돈을 빌려주는 SBA 융자이다. 지난 1994년부터 2003년 9월까지 BNB는 654개 한인업체에 총 1억6,600만달러의 SBA 융자를 했다. 대상 업종은 세탁업, 요식업, 델리 그로서리, 네일업, 의류업, 자동차 정비, 수출입 등 다양했다. BNB의 실적은 미동부지역에서 소형 은행중 1위를 기록했고 1994~`1995년도에는 미동부의 전체 은행 중 3위를 기록했다. 뉴저지에서는 3년 연속 최우수 SBA 융자은행으로 선정됐고 2003년에는 뉴욕주에서도 최우수 은행으로 뽑혔다.
정 행장이 SBA 융자에 치중한 이유는 작은 은행으로서 전문성을 살려야 했던 것 이외에 한인들의 사업을 지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SBA 융자는 인력이 많이 들고 연방법규와 세금보고 등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상품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잡화소매상을 한 경험으로 볼 때 한인들이 미국에 와서 사업을 할려고 하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기가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 융자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BNB가 이 SBA 융자를 통해 많은 한인들의 사업 확장에 한 몫 했다고 자부했다.정 행장의 은행경영방식은 독특한 점이 있다. 그는 BNB 개설 당시 이미 대형 한국계 은행의 지점들이 영업을 하고 있어 한인마켓을 상대로 경쟁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외국인의 예금을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은행의 직원중 고위층에는 외국인을 채용하는 등 시장 확대에 부심했다. 그래서 지금도 예금고객의 70% 이상이 외국인 고객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BNB는 외국인 고객의 예금을 받아 한인고객에게 융자하는 은행이 되었다.
이런 알찬 경영으로 BNB는 1998년부터 투자자들에게 연 8%의 배당금을 지급해 오고 있으며 2002년~2003년도 경영지표에 따르면 한인사회를 마켓으로 하는 은행 중 자기 자본 대 이윤율이 1위를 차지, 경영상태가 가장 좋은 은행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 행장에 따르면 은행 사업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에는 순수한 뉴욕한인은행과 한국은행의 현지 법인체, LA 은행의 뉴욕지점이 있는데 요즘엔 미국은행들이 한인 매니저를 채용, 한인시장을 파고들기 때문이란다.
예를 들어 포트리의 경우 10개의 미국은행이 있는데 모두 한인 매니저를 두고 한인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인 무역업이 거의 죽다시피 되어 신용장 개설 건수는 18년 전 은행설립 당시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극복하기 위해 BNB는 고객을 뉴욕주 이외의 지역으로 넓히고 새로운 여수신상품을 개발하는 등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 행장은 기업환경이 어려운 때일수록 작은 은행은 내실을 기하는 도리 밖에 없다는 생존철학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 행장은 스스로 은행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는 20여년간 은행 설립부터 경영을 이끌어 오는 동안 어느덧 전문 은행인이 되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며 뉴욕 순수 교포은행인 BNB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인물이기도 하다. 18년을 맞은 BNB가 뉴욕한인들의 성원으로 성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고객들에게 더욱 성실하게 봉사하겠다면서 순수 뉴욕 한인은행인 BNB를 뉴욕한인들이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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