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신들을 우습게 여겼다가 벌을 받는 인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 신전 근처에 살던 에뤼시크톤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이 신들을 경외하는 것을 조롱하며 데메테르 여신이 사랑하던 신전 고목을 보란 듯이 찍어버 린다.
진노한 여신은 오만 방자한 그에게 온 세상이 동정할 만큼 무시무시한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끝없는 허기의 병이다.
걸신 들린 에뤼시크톤은 미친 듯이 음식을 먹어 치우지만 허기는 심해지기만 한다. 채워지지 않는 식욕을 채우기 위해 그는 땅을 팔고, 집을 팔고, 전 재산을 팔고, 나중에는 하나 밖에 없는 딸까지 팔아 버린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극에 달한 시장기와 몸뚱이뿐. 그는 양쪽 팔을 시작으로 다리를 잘라먹고, 엉덩이 살을 베어먹고, 마침내 입술까지 베어먹는다. 여신의 복수가 끝난 자리에는 이빨 한짝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먹고, 먹고, 먹음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벌은 오늘의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에뤼시크톤의 배고픔이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산더미 같은 음식을 먹고도 여전히 먹고 싶은 끝없는 허기 때문이라는 점은 풍요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식욕과 닮았다. 생명보존에 필수적인 식욕이 도가 지나쳐서 우리 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에서 죽음을 자초하는 원인 1위는 흡연이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질병들이 많이 있지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행위를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각종 암과 심장질환 등 질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43만5,000명(2000년 기준)에 달한다. 전체 사망의 18.1%로 그만큼 생명에 위협적인 생활습관은 아직까지 없다.
그런데 ‘흡연’의 뒤를 바짝 쫓는 다크 호스가 등장했다고 연방질병통제 예방센터(CDCP)가 최근 발표했다. 너무 먹고 너무 안 움직여서 생기는 ‘비만’이다.
CDCP는 2000년 한해동안 비만이 원인이 되어 사망한 케이스가 40만건으로 전체 사망의 16.6%에 달한다며 비만이 흡연을 제칠 날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에서 과체중·비만인구는 1억2,960만명. 전국민중 3명에 2명 꼴이 ‘뚱보’이다. 성인 중에서 체중과다는 제외하고 비만만 꼽아도 5,900만명이다. 전체 성인인구의 30%가 넘는 숫자이다.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동맥경화등 각종 성인병 환자이거나 잠재적 환자인 이들이 만성 질병을 멍에처럼 달고 살아야할 삶의 질도 문제이고, 길어진 수명을 채우며 써야할 천문학적 의료비도 문제이다.
인류의 건강을 개선시키느라 애쓴 현대의학의 공적이 개개인의 식욕 때문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해서 문제인 사회에서 비만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고 싶은 욕망이 날씬한 몸을 갖고 싶은 욕망을 넘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일까.
이 세상에서 과식이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는 존재는 인간뿐이라고 한다. 가축과 동물원의 동물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지만 그 역시 인간의 책임이므로 동물들은 무죄이다. 배가 부른데도 먹는 것은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A.H. 마슬로박사는 욕구단계설로 유명하다. 식욕·성욕등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사랑에 대한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기 실현의 욕구 등 5가지의 욕구가 단계적으로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거꾸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 손쉽게 채워지는 기본적 욕구에 집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외로워서 먹고, 스트레스 때문에 먹고, 심심해서 먹는다. 많은 경우 과식은 정신적인 허기가 원인이다. 식욕을 채움으로써 다른 허전함을 채우려는 심리이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먹지 않는 것- 비만 예방의 기본이다. 그보다 좋은 것은 밥 안 먹어도 배부른 일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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