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부모들은 걱정이 너무 많아요”
몇 달 전 글렌데일에 사는 한 여성 독자가 한 말이다. 그는 당시 우리 신문에 난 UC계열 명문대학의 한인학생 졸업률 기사를 보고 전화를 해왔었다. 한인학생들 중 대학 4년만에 졸업을 못하고 5년, 6년씩 걸려서 졸업하는 학생들이 상당수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학을 4년만에 졸업하나 5년 걸려 졸업하나 큰 문제가 아닌데도 한인부모들은 그런 통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해요. 예를 들어 ‘GPA 4.0 받고도 어느 대학에 못들어 간다’는 기사가 나오면 그 순간부터 부모들은 또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행여 아이의 성적이 떨어질까 봐, 혹은 4년만에 졸업을 못할 까봐 아이들을 감시하며 다그치는 데 그런 안달이 자녀들에게 좋을 게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3월말로 신입생 입학사정이 끝나고 지난주부터 캘리포니아에서는 UC계열대학의 합격자 평균 GPA, SAT 점수, 인종별 합격자 수 등이 발표되고 있다. 매년 경쟁이 조금씩 심해진데다 주정부 예산삭감에 따른 정원 감축으로 올해는 유난히 대학 입학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통계를 보면 이제 GPA 4.0 정도로는 버클리, LA등 UC계열명문 대학들에는 명함도 낼 수가 없게 되었다.
한바탕 가슴앓이를 하고 난 12학년생 부모들의 뒤를 이어 10학년, 11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걱정의 바톤을 이어 받았다. 지나 보면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별로 없는 데 부모는 속 끓이며 안달하고, 아이는 반발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이 자녀들 대학 가기 전 통과의례처럼 되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걱정의 핵심은 무엇일까.
자녀의 성적이건 행동이건 걱정의 끝을 따라가 보면 다다르는 것은 아이의 장래이다. 자녀가 남부럽지 않게 잘 살도록 부모로서 보험 같은 걸 장만해주고 싶은데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로는 공부이고, 성적이며, 명문대학이다.
그래서 아이가 정상을 향해 똑바로 나 있는 길에서 한치라도 벗어날까 봐 부모는 매일 조마조마하다. 문제는 아이가 옆길로 샐까봐 공부 아닌 딴 데로 향하는 관심들을 지레 다 잘라내 버려 아이를 좁은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두는 것이다.
친지 중에 주류사회의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오래 일한 분이 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한인등 동양계 직원들은 회사 내에서 별로 빛을 못 본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취직해서 일도 잘 하지만 대개 사내에서 주류로 진입하지 못하고 변두리를 맴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경기가 나빠져서 감원을 할 때면 명문 대학 나온 동양계는 다 짤리고, 평범한 대학 나온 백인들은 남습니다. 실력이 아주 특출하지 않은 한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것이지요”
그는 그것이 “우리가 잘못 가르친 탓”이라고 했다. 부모에게 순종하며 공부만 하도록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이 그 틀 안에 갇혀서 크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좋은 대학에 입학을 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폭넓게 대인관계를 맺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분은 모교인 UC 계열대학의 장학생 선발 면접을 수년간 맡았는데 한번은 학생들에게 “대학에 못 들어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한인이나 중국인 학생들은 2년제 대학에 가서 공부하다가 4년제로 편입하겠다고 했어요. 예상했던 답이지요. 그런데 백인 학생들은 대개가 ‘세계를 두루 여행하겠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공부-대학’에 초점이 맞춰진 좁은 시야와 여유 있게 ‘세계’를 보는 시야의 차이는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등산을 가면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고 오는 적이 많다. 빨리 정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일념에 길만 따라 올라가기 때문이다. 정해진 길을 따라 제일 빨리 올라간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가 한국이라면, 수풀 속과 계곡을 두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을 존중하는 사회가 미국이다. 부모가 너무 걱정이 많으면 클 아이가 크지를 못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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