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파워가 곳곳에서 과시되고 있다. 남성들의 독무대다시피 했던 정계, 경제계는 물론, 스포츠, 교육, 문화계에까지 여성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뉴욕 한인사회도 여성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두드러진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은 한인 은행 대부분이 지점장을 여성으로 기용하는 점이다. 미국계 은행 지점에도 한인 여성 여럿이 지점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는 여성들의 파워가 갈수록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뉴욕일원 한인 여성지점장 약 20명(미국은행 포함) 가운데 접촉이 된 4인을 만나 그들의 오늘에 있기까지 이모저모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민금복 달라 드라이 닥 뱅크 와잇스톤 지점장
여성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보다는 쉬웠던 점이 훨씬 많았습니다.
민금복 지점장(49. 더글라스턴)은 한인여성으로서 한국계나 미국계 통 털어 가장 최초로 은행 지점장이 된 인물이다.
대학졸업 후 78년 조흥은행 뉴욕지점(4년6개월 근무)에 행원으로 입사, 구 캐미칼 뱅크 플러싱 지점장(6년반), 현재의 노스 폭 뱅크 와잇스톤 지점장(8년째)에 이르기까지 24년간 은행에 몸담고 있는 이 분야 베테랑이다.
처음 지점장이 된 것은 29세 때인 84년. 달라 드라이 닥 뱅크 플러싱 지점이었다. 당시는 한국에서도 여성 지점장이 없을 때이다. 그런데 미국계 은행에서 그가 지점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인여성의 강점을 인정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줄곧 지점장직을 맡고 있다. 그 비결은 고객을 위주로 한 서비스를 어느 누구보다 잘 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73년 미국으로 유학와 퀸즈칼리지, 세인잔스 유니버시티에서 MBA를 마치고 바로 은행에 입사, 오늘에 이를 만큼 은행밖에 모르는 외길을 걸어왔다. 동양인에다 여성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은행에서도 인터뷰할 때 지점장 역할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지만 막상 하고 보니 적중했다. 동양적 스타일로 고객들을 겸손하게 맞는 자세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민 지점장에게 있어 이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성공의 무기였고 책임자의 자리까지 가는 버팀목이 되었다. 이런 그의 강점은 직장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책임 있는 아내, 주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분명했던 것은 직장에 가면 가정 일을 몽땅 잊어버렸다.
집에 돌아오면 은행에 관한 것은 까맣게 지워버리고 가족에게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마치 전기 스윗치와 같이 미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장점만을 살려 미국직장과 한국가정을 오가며 변화를 주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민 지점장은 자신이 오늘에 있기까지 작고한 부친이 어렸을 때 난 사람(명예), 든 사람(학식) 사람, 된 사람(인품)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된 사람’이 되기를 강조한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일을 하면서 큰아들 달홍(25. 법대생)씨와 둘째 아들 지홍(21, 대학생)군의 학교생활도 빠짐없이 돌봐줄 수 있었다. 이는 은행이 가정을 가진 여성들에게 아주 좋은 직장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항상 성격이 밝고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편이어서 직장이나 가정생활에서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는 민 지점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항상 자신에게 떨어지는 일은 뭐든 노력하며 균형 잡힌 사고와 행동으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의 19년 은행지점장 생활 속에서도 한가지 원칙은 ‘무슨 수가 나도 직장보다
는 가정과 아이교육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다 보니 집안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잠시 은행을 그만두곤 하였다. 아이들 어렸을 때와 둘째 아들 낳았을 때, 그리고 남편의 일을 도울 때 은행 일을 놓았다. 시간이 날 때면 가족들과 함께 운동하고 또 좋아하는 책 읽기와 음악감상,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두곤 한다. 기독교 신자로 주말에는 부군 민경재(51. 제일제당 CJ 아메리카 뉴
욕지점장)씨와 함께 퀸즈한인교회에 나간다 .
■동미자 우리 아메리카 저지시티 지점장
섬세하고 부드러운 장점 때문에 고객과의 관계가 잘 이루어집니다.
동미자(49. 뉴저지) 지점장은 요즘 시대는 전반적으로 성별보다는 능력위주여서 여성들이 활동적이고 자신감과 성취욕도 높아 업무결과가 남성들보다도 더 성공적인 결실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은행업무 경우 외부인도 많이 만나야 되고 어느 분야보다 서비스업무가 많기 때문이란다.
동 지점장이 처음 은행에 몸을 담은 것은 83년 맨하탄 브로드웨이소재 제일은행에서 클락으로 일하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에 한국계 은행이 처음 진출했을 때 동 은행 현지법인의 창립 맴버로 은행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 21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점장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동안 클락, 총무, 고객서비스, 론, LC모게지, 여신 등 안 해본 업무가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일해왔다.
제일은행에서 15년 근무하다 98년 리버티 뱅크에 대리로 간 뒤 능력을 인정받아 6개월 후 지점장이 되었다. 2001년에는 다시 뉴저지의 팬 아시아 뱅크로 들어갔다. 이 은행이 우리 뱅크와 합병, 우리아메리카 은행이 되고 나서 뉴저지 팰리세이즈 팍 지점에서 론 오피셔로 일하다 지난 3월24일 지점장이 되었다.
그만큼 오랜 기간의 경험으로 고객에 대해 서비스할 수 있는 노하우를 많이 갖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점이 많다는 동 지점장의 신념은 뭐든지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걸 제일 먼저 파악해 그들의 희망사항을 제대로 찾아주는 것이다.
81년 이민와 은행에 몸담으면서 지금까지 계속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부군 동승태(52)씨와 대학에 재학중인 외동딸 숙영(21)양의 도움과 보이지 않는 협조 덕분이었다. 한마디로 가족의 도움이 오늘에 이르게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 지점장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은행 일에 더 전념하게 돼 언제나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은행업무를 해오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우리의 친절이 고객에게 전해졌을 때라며 고객을 가족같이 대해주면 그들이 항상 친근감을 갖고 격려도 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은행 시스템을 잘 몰라 우리를 이해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자기 입장만 주장하며 소리지르고 할 때는 정말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딸이 어렸을 때는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가졌으나 지금은 나가 있고 같이 다닐 시간도 많지 않아 가급적 시간이 있으면 교회(뉴저지 제일 한인교회 집사)에 나가 신앙생활로 마음과 몸을 푼다.
주말이면 오는 외동딸과도 만나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묵상하고 한 주 동안 서로가 올바른 삶을 살았는가 따져 본다. 잘못이 있으면 반성하고 회개하는 시간도 갖는다. 그만큼 모든 생활을 하나님과 같이 하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다. 동 지점장의 분위기는 통상 꼼꼼하게 보이는 행원들의 모습보다 좀 더 자유스럽고 쾌활하고 개방적으로 보인다.
■강미화 조흥은행 플러싱 지점장
아직까지 한인사회가 여성들에게 매우 폐쇄적입니다.
한국계은행의 여성지점장 가운데 가장 젊은 층에 속하는 강미화(42. 뉴하이드 팍) 지점장은 고객들을 대하다 보면 여성들에 대한 한인남성들의 생각이 여전히 보수적인 것을 강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불만을 털어놓을 때 남성고객으로부터 나오는 발언은 여자가 지점장이야? 남자 없어?하는 말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반증인 동시에 강 지점장이 느끼는 어려움이다. 강 지점장은 89년 가톨릭 신용조합에 텔러로 들어가 6년반 동안 어카운팅, 수퍼바이저 등을 거친 뒤 잠시 은행을 떠
났다 다시 복귀해 오늘에 이르렀다.
적성상 은행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맞지 않아 은행을 그만 두고 나서 일반 개인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은행이 천직인 듯 다시 은행으로 돌아와 텔러로 일하게 되었다. 그 때가 97년. 얼마 후 첵 콜렉션업무를 보다 2001년 대리가 되면서 처음 은행에서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고객들을 대하며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어느 날 지점장이라는 직함이 붙게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하는 업무는 대리 때와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한다. 강 지점장은 나이가 어려도 다른 선배지점장들과 다름없이 가정에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여성이다. 직장에서는 가급적 자신의 위치를 내세우기보다 제일 큰 언니로서 동료간 화합과 단합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웠을 때 같이 도와주고 상담도 해주고 하는 그런 역할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자식욕심이 많은 탓(?)인지 뷰티 서플라이 도매업을 하는 부군 강경철(43)씨와의 사이에 첫아들 비오(19. 대학생)군과 둘째 아들 정현(15. 고교생)군, 막내아들 승현(10. 초등생)군, 외동딸 지현(12. 중학생)양 등 3남1녀를 두고 있다. 물론, 이들의 성장에는 지금까지 친정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강 지점장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재물을 남기는 것보다는 열심히 사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며 가족과는 주말을 이용해 최대한 함께 지내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인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딸이 사춘기를 맞았을 때 좀 힘들었지만 가능한 대화로서 풀고 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그 아이가 자신의 대학생활에 만족해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걸 보니 사춘기 때 공연히 지나치게 걱정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오히려 딸을 걱정하면 자신보다 더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딸이 확신감을 심어주어 이제는 딸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그저 잘하고 있는 딸이 고맙고 대견스럽다고 말한다.
이따금 틈이 나면 딸과 함께 샤핑을 가거나 스케이트를 잘 타는 부군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스케이트장에 가곤 한다. 강 지점장의 소신은 오로지 조금 밑진다 싶게 사는 것과 안 되는 것 억지로 하다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순리대로 사는 것이다. 앞으로 여건이 허락되면 CPA를 하고 싶다고 한다. 이유는 아무래도 은행 업무를 계속 하다 보니 공통된
점이 있어 공부하기가 쉬울 것 같아서 란다. 강 지점장 가족은 일요일이면 퀸즈한인천주교회에 나가 신앙생활로 한 주를 다진다.
■제인 양 브로드웨이 내셔날 뱅크 포트리 지점장
항상 고객과 은행의 입장을 모두 배려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양(55. 뉴저지 놀우드) 지점장은 고객과 은행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72년 홍콩 샹하이 뱅크 전신인 머린 미들랜드 뱅크(5년 근무)에서 클락으로 시작, 은행근무 19년만에 지점장이 됐다. 지점장이 되기까지 외환은행 뉴욕지점과 브로드웨이 지점에서도 4년간 고객서비스 담당으로, 체이스 뱅크가 인수한 카토레 세이빙스 뱅크 오라델 지점에서도 고객서비스 업무담당을 거쳤다.
처음 팬 아시아 뱅크의 지점장이 된 시기는 95년. 이곳에서 지난해 7월까지 근무하다 현재의 브로드웨이 내셔널 뱅크로 옮겨 계속 책임자로 은행살림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 한양 공대 건축학과를 공부한 양 지점장이 미국에 와서 은행에 몸을 담게 된 것은 가정의 내력이 보이지 않게 작용이 된 것 같다.
고인이 된 조부가 한국은행 조폐공사에서 근무했고 부친도 은행가였다. 자신은 은행에서 멀어지려고 했지만 은연중 첫 발을 은행에 들여놓고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특기할 사항은 그의 부군 역시 은행원이라는 사실이다. 외환은행에서부터 시작, 지금은 시티뱅크에서 20년째 근무하고 있다.
덕분에 양 지점장은 남편 양성택씨(57)로부터 가정생활에 남다른 이해와 협조를 받고 있으며 업무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언과 상담을 받고 있다고 귀띔한다. 일을 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며 단지 직원들한테 더 잘해주고 싶어도 회사방침에 따라야 하다 보니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 조금 아쉬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
책임자로서 항상 직원간의 화합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최대한 충족시켜 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그동안 직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주변에서 별로 인정을 하지 않
을 때다. 이따금 책임자로 일하다 보면 문제가 생겨 가슴이 ‘철렁’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일을 해결할 때 양 지점장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은행원으로서 은행의 구조를 모르고 또 언어로 인해 불편을 겪는 한인들에게 친절하게 도와주면 그 보답으로 계속 고객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는 것이 보람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항상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면서 정직하고 친절하게 남의 일을 내 일 같이 돌봐주는 것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처음 미국에 와서는 그림을 좋아해 FIT에 다니기도 했으며 NYU 컨티뉴 에듀케이션 프로그램에서 컴퓨터를 공부한 적도 있었다. 앞으로도 여건만 허락되면 미완성 그림을 마치고 싶고 운동삼아 시작한 골프를 좀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소박한 계획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여행도 많이 다녔으나 이제는 아이들도 성장하고 시간도 많지 않아 요즈음은 잘 못 다닌다. 그 대신 가족이 이따금 모여 외식을 하며 정을 다진다.
양 지점장은 뉴저지 아콜라 감리교회 구역장으로 남편(장로)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슬하에는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중인 딸 에이미(24)와 영문학을 마치고 현재 음반 기획을 하고 있는 아들 잔(25)이 있다.
여주영 논설위원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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