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한국 총선에서 스타가 된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인터뷰한 기사를 얼마 전 읽었다. 대학 나와 대기업에 취직해 중산층으로 안락하게 살아도 될 것을 굳이 노동운동이라는 ‘좁은 문’을 택했던 그의 험난한 삶이 소개되었다.
그의 선택과 이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터뷰 말미에 붙은 한 이야기는 진보·보수의 경계를 뛰어 넘어 모두의 가슴에 와 닿는 따뜻함을 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이야기였다.
70년대, 80년대 대학에 다닌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마도 ‘데모하지 마라’였을 것이다. 데모하다 잡히면 앞날을 기약할 수 없던 추운 시절이었다.
공부 잘 하던 아들이 데모도 아니고 위장 취업해 공장에 다니는 걸 알았을 때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당연히 놀래시고 크게 화를 내셨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리고는 10년쯤 후 무슨 계기였는지 그는 어머니로부터 스크랩 북을 한아름 전해 받았다. 10권이나 되는 스크랩 북 페이지 페이지는 노사 문제 관련 기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왜 하필이면 이 길일까”속 상해하고 애타하면서도 어머니는 노동운동 하는 아들을 위해 관련 기사가 눈에 띌 때마다 읽고 자르고 모았던 것이었다. 너무 따뜻해서 가슴 저린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후 그의 어머니는 또 10권의 스크랩북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정치관련 기사들이었다고 한다. 아들이 정치에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20권의 스크랩 북, 그리고 그 세월에 담긴 것은 기사만은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신문 조각이지만 그 보다 더 많은, 간절한 기도가 거기에는 담겨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식은 어머니의 걱정과 기도를 먹고산다.
캐나다에서 그린랜드에 이르는 툰드라에 서식하는 사향소는 새끼 사랑이 유별나다. 이리나 승냥이들의 습격을 받으면 어미들은 본능적으로 어린 새끼들을 가운데로 몰아 넣고 둥글게 진을 친다. 그리고는 뿔을 밖으로 향하고 대항을 하는 데 잡혀 먹히면서 까지도 도망가지 않고 새끼들을 지킨다고 한다.
생존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일 것 같은 동물들이 이런 이타적 행위를 보이는 데 대해 과학자들은 유전자 보존을 위한 본능이라는 해석을 한다. 개체의 생존 보다 유전자를 보존하려는 본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성애도 근본적으로는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한 본능이라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평생에 걸친 어머니의 사랑을 본능으로만 해석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자식을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돌보는 긴 수고의 과정이 없다면 여성이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여성은 어머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던 여성이 어느 순간 자신을 말끔히 지우고 다른 존재를 품어 안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모성애이다.
불가에는 ‘살아있는 부처’ 이야기가 있다.
홀어머니와 살던 한 젊은이가 어느 날‘살아있는 부처’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스님에게 물었더니 스님은 “저고리를 뒤집어 입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이를 만나면 그가 바로 살아있는 부처”라고 했다.
젊은이는 ‘부처’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 깊은 산중의 절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부처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 있다”고 해서 장터와 거리를 다 살폈지만 그 또한 허사였다.
3년을 헤맨 젊은이는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가 문간에서 “어머니”를 불렀다. 집 나간 아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 기다리다 잠자리에 든 어머니는 아들 목소리에 놀라 뒤집어 벗어놓은 저고리를 그대로 걸치고, 섬돌 위에 놓인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문간으로 달려나갔다. ‘살아있는 부처’는 집안에 있었다.
내가 기억할 때나, 잊고 있을 때나 항시 나를 바라보고, 염려하며, 기도해주시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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