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화창한 5월은 아시안 아메리칸 문화유산의 달이기도 하다.
이 5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오는 29일 뉴욕의 센트럴 팍에서는 신명나는 우리 가락이 울려퍼지는 풍물놀이가 펼쳐진다. 센트럴 팍의 72가 야외음악당에서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아프리카 어린이 공연단과 쿠바 민속공영단의 공연이 있고 이어 오후 5시 뉴욕풍물단의 한인들이 흥을 돋구게 된다. 이 행사는 뉴욕풍물단이 지난 1994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개최해 오고 있는 풍물놀이 한마당 잔치인 것이다.
뉴욕풍물단은 미국에서 풍물놀이를 심고 있는 육상민씨(52)가 1989년에 창단하여 지금까지 대표를 맡아 이끌어 오고 있는 단체이다. 풍물을 좋아한 10여명의 한인들이 모여서 만든 뉴욕풍물단은 현재 30여명의 회원이 있는데 그간 뉴욕의 코리안 퍼레이드, 보스턴의 7·4 퍼레이드, 월드트레이드 센터 앞의 서머 페스티벌, 콜든센터 초청공연 2회 등 수백회의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에서 보여준 춤과 가락이 어우러진 신명나는 풍물놀이는 수많은 미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그들의 마음 속에 감명을 주었다.이 풍물단을 이끌고 있는 육상민씨는 한 마디로 풍물에 미친 사람이다. 풍물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가르친다. 그는 뉴욕지역에 있는 수많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풍물단을 만들었고 커네티컷에 있는 웨슬리안 대학에 풍물과목을 설치, 강의를 맡고 있다. 미국 속에 한국의 풍물을 심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풍물 전도사라고 할 수도 있다.
대전 출신인 육씨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중고등학교 때부터 음악과 미술을 좋아해 평생을 예술 계통에 종사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 복학을 준비하던 때 우연히 석촌호수에서 벌어졌던 강남놀이마당의 풍물패를 보게 되었는데 이 때 그 신명나는 놀이에 쇼크를 받아 풍물의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그는 예술 계통의 일을 하면서 틈만 나면 시골을 찾았다. 풍물을 전수받기 위해 농악단의 어른들을 찾아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갈 때마다 풍물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면서 그 다양성에 놀랐다고 한다.
호남만 해도 좌도와 우도가 달라서 그는 호남좌도에서는 김봉열 상쇠, 호남우도에서는 유지화상쇠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꽹가리, 징, 장고, 북, 태평소(날나리)의 소리가 춤과 함께 어우러져 신명을 돋구는 풍물은 흔히 농악이라고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깊이가 있고 철학을 알게 된다는 것이 육씨의 말이다.
그는 먼저 이민을 와서 뉴욕에 살던 부인과 결혼하여 1985년 뉴욕에 정착했다. 어느 이민자나 마찬가지로 그는 수퍼마켓의 종업원 등으로 전전하면서 생활을 꾸려 나가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던지 1988년 코리안 퍼레이드 행사 때 농악대 선도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여 15명의 농악대를 만들어 퍼레이드 행사에 나갔다. 타임스퀘어 근처에서 식전 행사로 풍물놀이를 한판 벌였다. 구경하던 한인들은 물론 미국인들까지 박수갈채를 보냈는데 그 박수가 그저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감동이 넘치는 것을 그는 느꼈다고 한다.
“풍물이 미국에서 먹히는구나. 그래, 풍물을 미국에 심자” 그의 마음 속에서는 감격이 용솟음 쳤다고 한다.그는 한인학생들이 재학하는 고등학교마다 전화를 걸어 풍물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학교마다 대체로 반응이 좋았고 특히 브라이언트 고교나 뉴타운고교처럼 한인 교사들이 있는 학교
에서는 한인교사들이 발벗고 나서 도와주었다.
그는 풍물을 배우겠다는 학생이 있는 학교에는 악기 수십개씩을 싣고 다니며 며칠씩 가르쳤다. 이러는 동안 학교마다 풍물을 배운 학생들이 인터내셔널 축제가 있을 때는 한국 풍물을 소개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풍물을 더 깊이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뉴욕풍물단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그는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에도 풍물을 보급하기 시작, 현재 스토니브룩, 예일, 컬럼비아 등 한인학생이 많이 있는 학교에는 풍물단이 조직되어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커네티컷에 있는 웨슬리안 대학의 한 한인학생으로부터 풍물을 가르쳐달라는 연락을 받고 육씨가 학교에 갔더니 10여명의 희망자가 모였는데 대부분이 미국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각 나라의 민속음악을 연구하는 비교음악이 유명한 학교로 다른 나라의 예술에 매우 개방적이었고 미국학생들이 다른 나라의 민속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중국음악, 일본음악 과목이 이미 설치되어 있었는데 한국음악 과목은 아직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 이 학교에 풍물을 심자” 육씨에게 이렇게 새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그는 이 대학의 동아시아학과 과장인 중국인 교수의 도움으로 음대 학장의 승낙을 받아 작년 9월학기부터 풍물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 학기에는 수강생이 9명이었는데 2학기가 끝난 후 수강신청 희망자가 50명으로 늘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정원 15명을 25명으로 늘렸다고 한다.
이 과목에 대한 재정 지원은 뉴욕문화원의 주선으로 한국의 문화관광부
가 맡았다. 학교측은 2년간 한시적으로 이 과목을 신설해 본 후 존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남은 1년간은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지만 그 이후 재정적 뒷받침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그는 한국기업의 후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풍물이 미국인들에게 먹히고 인기가 있는 것은 특유의 신명나는 놀이이기 때문이라고 육씨는 설명한다. 악기가 가벼워서 다루기가 쉬운데도 소리가 요란하고 음악 뿐 아니라 춤이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에 시각적 효과마저 있어 신바람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연주자는 물론 구경꾼까지 어우러져서 하나가 되는데 이런 신바람으로 다른 민족과 어우러질 때 민족간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화합의 가교, 즉 Bridge to Harmony란 이름으로 1998년부터는 센트럴 팍 공연을 다른 민족과 합동으로 해오고 있다.
그는 나라마다 문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특히 작은 나라일수록 문화 이미지가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면서 브라질의 삼바, 스페인의 플라밍고, 덴마크의 인어공주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아름다운 문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쟁, 핵문제, 노사분규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게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육씨는 자신이 미국에 와서 살기 때문에 더욱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에서 살았더라도 하고 싶었던 풍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았겠지만 미국에서 사니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할 수가 있어서 더욱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늘 단원들에게 “우리는 문화 전도사이기 때문에 언행과 매너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일찌기 우리 고유의 심신수련법인 국선도를 익힌 국선도 사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드사이드와 플러싱의 열린 공간에서 국선도를 가르치는 것이 그의 생업이라면 생업일 수 있다. 풍물과 함께 살아온 그는 이제 미국에서도 풍물이 웬만큼 알려졌고 확산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공연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제도권에 한국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웨슬리안대학처럼 다른 대학에도 풍물 과목을 설치하는 일을 계속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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