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되면서 출퇴근길이 많이 수월해졌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바퀴 자국들이다.
한두 차선을 가로지르는 짧은 자국도 있지만 보기만 해도 아찔한 자국들이 의외로 많다. 너덧 차선을 가파른 각도로 가로지르며 중앙 분리대나 갓길 앞에서 딱 멈춘 바퀴 자국들을 보면 그 자동차와 운전자에게 어떤 일이 닥쳤을 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고속도로에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는 것은 두가지를 의미한다. 운전 속도와 방향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뒤늦게 속도와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운전자가 기를 쓰고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것.
“지금 가고 있는 이 속도, 이 방향은 괜찮은가”- 생각해보는 여유가 있었다면 저렇게 위험한 사선의 곡예를 벌이지는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궤적도 그런 게 아닐까. 천상에서 내려다보면 종말이 분명한 속도와 방향으로 지금 우리는 눈먼 장님처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속도로에서 잠시 빠져 나와 운전 방향과 속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데, 우리 삶의 무대에서는 그것이 여행이고 휴가이다.
독립기념일이 연휴로 연결되면서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이 많다. 미전국적으로는 거의 4,000만명이 여행길에 오르리라는 전망이다. 자영업 종사자가 많은 이민 1세들의 눈에는 미국인들의 정착된 휴가 문화가 부럽기도 하지만 정작 미국사회에서는 미국인들이 너무 일벌레라는 지적이 높다. 선진국 중에서 미국인들만큼 일만 하는 국민이 없다는 것이다.
휴가일수를 비교해보면 그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일반 근로자들의 휴가는 기껏해야 연간 1~2주인데 비해 독일의 경우는 말단 공장 노동자들도 평균 30일의 유급 휴가를 받는다. 프랑스에서는 5~6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25일이 평균 유급 휴가이다. 일년에 한달 정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여행을 즐기다 보니 일과 사생활이 균형을 잡게 되고 그래서 나머지 1년을 능률적으로 일할 수가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일벌레인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으로 분석이 된다. 물질적 생활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웬만큼 일해서는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현실적 이유, 그리고 노동의 숭고함을 강조하는 청교도적 정신이 무의식에 깔려있어서 노는 데 대한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정신적인 이유이다.
미국의 일벌레들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은 물론 우리 한인들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이다. 모든 양계장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천 마리의 닭을 가둬놓고 밤낮으로 알을 낳게 하는 양계시설에서도 닭 몇마리는 마당에 자유롭게 풀어놓는다고 한다. 닭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닭들이 없으면 갇힌 닭들은 삶을 포기하고 알 낳는 일을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도 닭장 속의 닭들과 다르지 않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좋은 가구 … 지출을 계속 늘리다 보면 부부가 밤낮으로 일을 해도 여유는 더 없다. 여행 혹은 휴가는 닭장에서 걸어나와 마당에서 뛰노는 자유로운 닭이 되어보는 경험이다.
여행에서 얻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눈이라고 본다. 새로운 풍경들을 구경하고 낯선 경험들을 하면서 새롭게 보는 눈을 얻을 수가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눈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드넓은 미국 땅을 여행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게 됩니다”
몇 년전 젊은 부부가 배낭을 메고 세계 여행을 한 후 여행기를 책으로 펴낸 적이 있었다. 그 여행기가 특이했던 것은 이들 부부가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여행을 통해 닫혔던 마음의 눈이 열리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경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달리는 이 방향, 이 속도가 정말 최선일까 - 잠시 멈춰서 새로운 눈으로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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