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칼/럼
▶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사람은 배가 고플 때는 먹을 것만 생각한다. 그러나 배가 부르며, 등이 따뜻하면 눕고 싶고, 콧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콧노래를 부르면 노래를 더 잘해서 남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고, 그 칭찬이 한 순간이 아니라 인생 다하는 날까지 계속 되기를 바라게 된다. 자연적이며, 생리적인 욕구에서 시작하여, 안전과 소속감, 그리고 자기 존중과 자기 실현의 욕구로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욕구의 단계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자기가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이 말은 자기가 사는 동안에 살아야 할 자리가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운명론적으로 말하면 비관적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말이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 이미 자기가 무엇을 하고, 어디서 살아야 하고, 어떤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노력과 자유 의지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논쟁이 되기에 넘어가고자 한다.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은 높아져도 교만하지 말고, 낮아져도 비굴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 더 강조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미 정해진 자기의 자리가 아닌데 그 자리를 벗어나 다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설령 다른 자리에 앉았더라도 그 기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단지 몇 년의 영화와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머지 인생과 죽음 이후의 평가는 다른 자리에 앉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만 남게 된다.
단종을 폐위하고 세조가 된 수양대군을 등극시키는 계유정난이 일어날 때 함께 수양대군의 편에서 일조를 한 한명회는 한평생 살면서 재물과 권력의술에 취하여 사는 행운을 쥐게 되었다. 한때는 미관말직에 있었던 사람이 세칭 줄을 잘 서게 된 고로 일약 출세의 길에 올라선 것이다. 그의 딸 둘이 예종과 성종의 부인이 되었으니 그의 세도가 어떤 지는 짐직 할만하다. 세월이 지난 후 그는 한강 이남에 정자를 지어놓고 그 정자의 이름을 압구정(狎鷗亭)이라 했다. 그 이름의 뜻은 “갈매기를 사랑한다”라는 자연 친화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정자에 큰 시를 써 놓았다. “청춘부사직(靑春扶社稷)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 젊어서는 나라를 위해 힘쓰고, 나이 들어서는 자연을 벗삼아 누워 지낸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명회는 그 시처럼 자기가 서있어야 할 자리나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했다.
당대에 함께 살았던 야인이며 문인이었던 김시습은 그 시를 보고 개탄하면서 그 시를 고쳐 놓았다. 부(扶)자를, 망(亡)자로, 와(臥)자를 오(汚)자로 바꿔 놓았다. 그렇게 되니 청춘부사직(靑春扶社稷)이 청춘망사직(靑春亡社稷)으로, 백수와강호(白首臥江湖)가 백수오강호(白首汚江湖)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의미가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는 뜻으로 바뀌고 말았다.
성경은 말씀한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누가복음14:8-10)
비행기를 타거나 아니면 운동경기를 가보게 되면 자리에는 등급이 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속사정이 어떠하던 간에 그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이면 그 사람까지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성경의 말씀처럼 서로가 이 자리가 당신의 자리라고 양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설령 제일 높은 자리에 앉는 경우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제일 낮은 자리에 앉는 경우라도 부끄럽지 않다면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서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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