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굶은 당신 앞에 산해진미로 차려진 밥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식사 후 하루동안 화장실 사용을 금한다는 조건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래 전 애틀랜타 문인회 문학강좌에 초청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주 강사였던 원로시인 고 박남수 선생님과 그곳 문인들과 함께 테네시로 가면서 대화 중에 악성 방광염을 앓고 있던 박우서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때 그는 소변을 술술 잘 보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면서, 술 취한 사람이 골목길에 방뇨한 오줌줄기를 끝까지 따라 가본적도 있다고 했다. 그 후 그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내가 새삼 그 박 시인을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 문인들과 여행을 하면서 배를 불리는 일보다 배 비우는 일이 얼마나 더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산장은 5번 국도선상에 있다. 발렌시아를 지나면서 동네가 끊어지며 북쪽으로 3,000피트를 오르는 산모퉁이 22마일 구간에는 식당이나 정유소가 없어서 운전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차 엔진 과열이나 개스가 떨어지거나 차 고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특히 화장실에 들리는 사람들이 남의 집 게이트를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프리웨이 휴게소처럼 화장실을 마구 어질러놓고 심지어 화장지와 종이 타월까지 둘둘 말아 가는 것을 보면 도와 준 보람을 못 느껴 인정사정 없이 화장실 문을 잠그고 싶어진다.
삶은 후세를 위해 지나 간 자리가 고와야 하고, 화장실은 뒷사람을 위해 거쳐간 뒤가 깨끗해야 한다. 우리들은 그들의 매너를 보고 민족성이나 인간성을 채점하게된다.
화장실은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말과 배설물에는 촌수가 있다는 우리 속담이 어찌 그리 진리 같은지.
그 많은 화장실 사용자들에게 배를 채워 보냈다면 얼마나 많은 인사를 받았을까. 배불리는 것보다 더 요긴한 대접을 하고도 내 후한 인심이 짓밟혀 입맛이 떫을 때가 많다.
외딴곳에 살다보니 화장실 관리 직원 구하기가 매우 힘든다. 그래서 나는 우리 청소 직원을 정말 중하게 여긴다. 우리 RV 고객들은 자기 차의 화장실을 쓰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고 산장 중앙에 있는 공동샤워나 변소도 자기 집처럼 깨끗하게 쓰는 편이다(공휴일 텐트 캠핑이 많을 때는 경우가 좀 다르긴 하지만.)
외부 길손들의 나쁜 매너를 본 우리 고객들이나 직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길에서 가까운 게이트 옆 화장실은 잠그고, 제발 공중변소가 없다는 사인까지 붙이라고 성화다.
치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집 물은 전기로 펌프질을 해서 뽑아낸 지하수여서 물 한 방울도 공짜가 아니고, 화장실 오물도 하수구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모았다가 일년에 두 번씩 기금을 주고 퍼내는 시설이다. 그 비용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시급하고 요긴하게 사용한 남의 시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 화나는 이유는 우리직원들이 손님들로부터 화장실 깨끗하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타운에 많은 한인업소들이 있다. 업주들도 화장실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겠지만 손님들도 요긴한 공간인 업소 화장실을 소중하게 여겨서, 고객과 업주가 서로 위해주는 분위기가 됐으면 싶다.
멀리 살면서 가끔 한인타운엘 가면 즐비해있는 한인 업체들이 나를 위해 있는 것처럼 고맙게 여겨진다. 특히 타국에서 서름 받는 한글과 모국어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욕구불만을 해소시켜주는 모든 언론들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우리들이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권력 명예 물질 감투 등도 채운만큼 비워야 한다는 생활 철학을 터득 할 수 있다면 좋은 인격도야가 되지 않을까.
다가오는 노동절에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곤도 풀고, 고 박우서 시인의 얘기를 기억하며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강에 감사하고, 가는 곳곳 신세진 화장실의 고마움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성호 시인·RV 리조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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