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 개띠들끼리 모여앉아 다가올 개띠 해에 대해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던 자리에서 용감하게 내뱉은 말이다. 그래도 나이만큼, 살아온 만큼은 쌓였을 거라고 믿고 싶은 삶의 맷집이 이제는 제법 사랑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고 여겨졌던 것일까?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언제나 빚을 진 기분인 내가 어떻게 이처럼 자신 있게 사랑 타령을 했을까 의아스럽다.
아마 개띠 해에는 왠지 개띠라는 이유만으로 뭔가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언제나 어려운 숙제인 이 ‘사랑하기’를 이번에야 말로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던 것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매번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짐했던 신년 계획들이 얼마 못가 일상에 묻혀 잊혀 지면서 그야말로 계획 그 자체로만 남아있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한 해를 몽땅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이 때 쯤이 되어서야 아차 싶어 바삐 지난 한해를 돌아보곤 한다. 올해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사랑하기 좋은 나이라 다짐했던 그 마음을 한해 동안 얼마나 되새기며 얼마나 실컷 사랑을 하며 보냈을까 돌아보게 된다.
2006년엔 10여년 만에 두번씩이나 한국을 방문했던 일이 나에게는 대단한 사건이었던 듯싶다. 평소 그저 집과 직장근처를 맴돌며 지내서인지 ‘올해 참 뭐하고 살았지?’ 자문하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일이니 말이다. 마냥 그립기만 하던 얼굴들과 오랫동안 묵힌 정을 듬뿍 나눌 수 있었던 순간들,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 짧은 와중에도 수 없이 생긴 즐겁고 뿌듯한가 하면 걱정스럽고 속상했던 일들…
그런데 문득 오랜만에 멀리서 다니러 왔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그저 받기만 하고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즐거운 추억들이 구겨지려 했다. ‘사랑도 주고받는 계산이 맞아 떨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이것도 일종의 사랑 콤플렉스인가?’ 마음의 주름이 어디서 오는 걸까 살펴보는 순간 같이 했던 시간들, 내가 준 마음들, 그 웃음들, 계산은 맞지 않더라도 그저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 다시 내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노라면, 특히 사랑의 장애물을 살펴보노라면 항상 먼저 떠오르는 어느 신부님의 강론이 있다.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부모님, 가족을 용서하고 친구를 용서하고 주위를 용서하고…” 흔히 듣는 용서의 말씀이지만 관계와 상처와 용서와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이다.
가장 상처 입기 쉽고 그래서 용서하기도 사랑하기도 힘든, 나와 가장 가까워 잘 보이지도 않는 나, 그리고 다음 순서가 되는 가족, 친구, 세상 등… 누구나 함께 할 때 생겨날 수밖에 없는, 거기다가 그 관계들에서 내 스스로 만들어낸 상처 자국들,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선 그 상처를 지워내는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내 인생을 시작하게 하고 가꿔주시느라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신 부모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을 향한 나의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내가 해 왔듯이 아이들도 스스로 용서를 배워가며 자신들을, 가족을, 친구를 그리고 세상을 한껏 사랑하며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불편한 마음을 달래본다.
사랑하기 좋은 해이고 싶었던 나의 개띠해가 다 갔다. 물론 걸리는 상처, 미움, 분노, 두려움, 이기심 혹은 다른 이유들로 마음껏 사랑하지는 못했지만 그 걸림돌들을 다독거리며 나름대로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해였다. 돼지해를 맞으며 다시 한번 못 다한 ‘사랑하기’를 다짐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이번 돼지해에는 자주 이 다짐을 떠올리며 아주 푸짐하고 넉넉하게 맘껏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선윤
USC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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