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부터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가 한 형제임을 가르쳐 왔다. 한 때 막연한 이상론처럼 들리던 이 이야기는 최근 유전 공학의 발달로 온 세계 인류의 유전자 지도가 작성되면서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유전자 지도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본다.
1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와 전세계 퍼져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제 과학자 사회에서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을 4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두 발 보행 원인’(Austalopithecus afarensis)에서 찾고 있다. 영장류 중 처음 두발로 걷기 시작함으로써 두 손이 자유롭게 됐고 그것이 인간을 향한 긴 여정의 첫발이 됐다.
그 후 200만 년 후 역시 아프리카에서 이보다 훨씬 진화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난다. ‘손재주가 좋은 인간’이란 말뜻처럼 이 때 와서 처음 돌을 깨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보다 조금 후에 출현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는 불을 다룰 줄 알았으며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이들은 처음 아프리카를 나와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현 인류의 조상이 출현한 것은 20~15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다. 이들은 10만 년 전부터 중동 지역을 통해 전 세계 각지로 퍼지기 시작, 6만5,000년 전 경에는 남부 아시아와 호주에 도착했으며 4만 년 전에 동아시아까지 오기에 이른다. 지금은 민족과 국가가 영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불과 수만 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그런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과거 유물 탐구 등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지만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일부 학자들의 반론이 그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조상은 수십 만 년 전부터 그곳에 살았던 고대 인류의 후손이며 아프리카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런 반론을 말끔히 잠재운 것이 유전자 지도다. 유전자 조사를 통해 아프리카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 차이가 아프리카 지역 외 어떤 사람들보다 크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대부분의 유전자는 대대손손 이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변이가 자주 발생한다. 따라서 변이가 많다는 것은 오래 전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만큼 친소관계가 멀다는 것을 뜻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고고학적으로 볼 때 최근인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나온 소수 이민자를 조상으로 갖고 있는 중동,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전자는 서로 비슷하고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살아온 사람들의 유전자는 이와 달라야 하는데 유전자 지도가 이를 입증한 것이다.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 원수같이 지내는 민족이 사실은 유전적으로 제일 가깝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전 세계에서 유전자적으로 제일 비슷한 것은 아랍인과 유대인들이다. 이들이 쓰는 언어도 모두 셈족어 계열로 조상이 같다. 이들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성경 구절을 허투로 볼일이 아니다.
남을 탓할 것이 없는 게 한국을 가장 괴롭히고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민족인 일본인들이야말로 한국인과 유전적, 언어적으로 가장 가깝다. 유전자적으로 일본인들은 처음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온 조몽 계열에 후에 시베리아와 만주, 한반도를 거쳐 들어간 북방 계열의 혼혈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닮아 있어 이를 별종의 언어로 분리하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다.
사람들이 인종을 나누는 표준인 피부색과 머리털, 눈 모양 등은 전체 유전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환경의 영향에 따라 비교적 단기간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유전자 지도는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잘못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유전자 연구 중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세포 안에 살고 있는 독립된 생명체인 미토콘드리아와 Y 염색체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로만 유전되면 남성에게만 있는 Y 염색체는 부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최근 많은 유전학자들은 전 세계 모든 인류가 한 여성의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창세기의 ‘이브’가 단순히 신화적인 존재를 넘어 실존 인물이 되게 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유전자 연구는 2001년 처음으로 인간의 모든 유전자를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한 인간의 유전자를 파악한 데 불과한 것으로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유전 공학은 지금까지 불치의 질병이던 유전병을 고치는데 획기적인 기여를 한 것은 물론 인류의 오랜 이상이던 ‘사해동포주의’가 단지 이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업적을 세웠다. 유전 공학의 발달이 인류의 오랜 편견을 씻어내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DNA 연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밝히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유전자로 본 인간의 역사’>
유전 공학이 각광을 받으면서 유전자와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 스티브 올슨이 쓴 ‘유전자로 본 인간의 역사’(Mapping Human History)는 몇 점 남지 않은 유물과 추측에만 의존해야 했다 인류의 고고사를 유전자를 통해 밝혀낸 최근의 업적을 일반인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쓴 책이다.
인류가 출현한 아프리카, 10만 년 전 이곳을 떠난 인류가 첫발을 디딘 중동, 아시아와 호주, 유럽, 아메리카, 전 세계 인류가 가장 다양하게 뒤섞인 하와이 등 6장으로 나뉘어진 이 책은 고고학과 언어학, 유전 공학의 결과가 어떻게 일치하는가를 보여주며 지역별로 유전자와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일례로 유대인 이름 중 ‘코헌’(Cohen), ‘칸’(Kahn) 같은 이름이 있다. 히브리어로 ‘제사장’을 뜻하는 ‘코하님’에서 나왔다. 이들은 모두 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 유대교에서는 이들만이 제사를 맡을 수 있다. 이들의 유전자를 조사해 본 결과 한 조상의 후예라는 것이 입증됐다. 입으로만 전해져 오던 전통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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