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지난 주 첫째 아이의 IQ가 둘째보다 평균 3 포인트 정도 높다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몇 번째로 태어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IQ뿐만이 아니다. 출생 순서가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본다.
장남은 책임감 있고 보수적
차남은 반항적이며 진취적
정치적 혁명에 다르게 반응
<소포니스바 앙기올라작‘3남매’>
출생 순서에 관한 기념비적인 연구로 불리는 이번 조사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이 밝혀진 것은 장남이나 장녀의 지능 지수가 둘째보다 약간이지만 분명히 높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장남이 죽거나 사라진 경우 둘째의 IQ가 그만큼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첫 아기라는 점에서 주변의 관심과 애정을 많이 받고 본인도 그만큼 책임감을 더 느끼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이 두뇌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첫째가 여러 자식 중 권위주의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반면 둘째는 권위에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이 있다. 이는 진화론적 ‘틈새 공략’ 전법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첫째가 강한 곳을 파고들기보다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생존 전략에 유리하다는 것을 둘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시까지 유럽 사회를 지배해 온 ‘창조론’을 뒤집고 ‘진화론’을 내세운 찰스 다윈 자신도 여섯 형제 중 다섯째였다. 뿐만 아니라 1859년 그의 ‘종의 기원’이 출판되자 장남의 절대 다수는 이를 비판하는데 앞장 선 반면 차남 이하는 대체로 이를 호의적으로 수용했다.
다윈보다 먼저 역시 중세 유럽의 보편적 세계관이던 ‘천동설’을 뒤엎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또한 세 자식 중 막내였다. ‘지동설’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것이 장남이 아닌 차남들이었음은 물론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하나로 손꼽히는 아이작 뉴턴은 장남이었다. 그러나 뉴턴은 유복자로 아버지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재혼해 그를 버림으로써 조부모 손에 자랐다. 뉴턴은 어려서부터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에 차 살았다는 점에서 보통 장남과는 조금 다르다.
차남들의 세상을 뒤바꿔 보려는 노력은 과학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유럽 역사에서 중세에 종말을 고하고 근대를 앞당긴 프로테스탄트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도 루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장남이 아니었다.
유럽 사상 개신교 혁명에 못지 않은 영향을 미친 프랑스 대혁명도 마찬가지다. 이를 이끈 사람들이나 적극 지지한 사람은 압도적으로 차남 이하가 많은 반면 장남들은 대체로 반대했다. ‘공포 정치’의 주동자인 로베스피에르는 장남이었지만 그 또한 뉴턴과 비슷하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세상을 개혁해야겠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가졌다고 한다. 개신교 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이 특히 파괴력이 컸던 것은 같은 집안 한 형제 사이에서도 정반대 입장에 선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장남-차남의 차이는 유럽 밖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유럽을 떠나 신천지를 개척한 사람들도 대부분 차남이었다. 1607년 제임스타운을 건설한 사람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온 사람들은 물론 그전 마야-아즈테크 문명과 잉카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 가운데도 장남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는 장자가 부모의 유산을 독식하는 장자 상속주의(primogeniture)가 한 몫 한 것도 사실이다. 장자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기 때문에 차남은 빈털털이가 되는 수밖에 없고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신천지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장자 상속주의를 유럽인들 해외 진출의 주요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인 것이 중국의 균분주의다. 장남 차남 가리지 않고 똑같이 땅을 나눠주는 관습 때문에 몇 세대만 지나면 모두 영세농으로 전락하고 과중한 세금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키며 이것이 중국 왕조가 200~300년을 주기로 몰락을 되풀이하는 원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어찌됐든 장남과 차남의 정치 성향이 이렇듯 다르다는 것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출생 서열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느 쪽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정치라는 새는 진보와 보수 두 날개로 난다’는 격언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진정한 사회 발전은 안정과 책임, 변화와 모험의 균형 속에 있음을 잊고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경종이 될만하다.
<엘리자벳 바우만작 ‘그림 형제’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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