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한인교회에서 친구의 아들 혼사가 있었다. 결혼식 시간 10분 전에 교회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식장 안을 들여다보고 아니나 다를까 했다. 예정시간이 임박했는데도 식장에는 기껏 열 사람이 될까 말까한 사람들만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바깥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빨라야 30분은 더 지나야 식이 시작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식 예정시각이 되자 어느새 주례를 맡은 목사는 자리를 하고 있고 식의 첫 순서인 양가의 어머니가 촛불을 들고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이 때야 바깥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하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자리를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늦게 참석하는 하객들을 기다리지 않고 예정시간에 맞추어 식을 거행하는 주례를 맡은 목사에게 존경이 갔다. 하찮은 일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결단이 필요한 용기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조적으로 말하는 ‘코리안 타임’이 아직도 어느 모임, 어느 행사할 것 없이 없어지지 않고 그 깊은 뿌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혼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래도 문화적이라 여기는 음악 연주회 같은 행사에도 참석자들은 언제나 에누리 시간을 붙여서 참석하는 사람이 다수인 것이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행사 참석시간에 늦는 것을 별로 심각히 여기지 않는 의식이 우리들 속에 은연중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 속에는 알게 모르게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고지서를 받고 돈 보내는 일이 그것이다. 모든 고지서는 그 기한이 있게 마련인데 그 중에는 그 기한의 성격이 절대적인 것이 있다.
절대적이라 함은 그 기한을 넘기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경우에 오늘 갚기로 했던 빚을 내일 갚는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각종 법적 공과금이나 보험료는 그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당장 중요한 법적 효력이 발생된다. 자동차 보험을 생각해 보자. 정해진 날짜와 시각이 지나면 즉각 보험 효력이 정지됨은 말할 것도 없다.
뉴욕주의 경우 운전자 보험 규정이 강력해 도로교통법은 자동차의 보험이 효력을 상실하면 그 차주의 운전면허가 정지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뉴욕 지역에서 정지된 운전면허로 운전하다 체포되는 한인들의 수는 다른 어느 인종들보다도 많다. 역시 보험 갱신에서 나타나는 ‘코리안 타임’이 가져 온 결과이다.
법원에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경찰에 체포되어 오는 한인들의 사건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이 운전면허 정지위반이고 또 그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 보험료를 제 때에 지불하지 않아 면허가 정지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의 대부분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자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건설업이나 집수리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법원에서 신상관련 질문을 하다 보면 이런 혐의로 들어온 사람들이 거의 다 이같은 직종 종사자들이다 보니 법원 직원들이 이제는 운전면허 정지사건을 “카펜터가 들어왔다”고 농담을 할 정도이다. 이들의 직업이 불규칙적이다 보니 생활의 패턴 또한 불규칙해졌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직종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성향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건설업자 중에 사업을 성공리에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로 법원에 오는 일은 드물다. 자유업에 종사하지만 나름대로의 규율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사업도 성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일로 법원에 다녀간 사람들은 보험 에이전트가 처리를 잘못해서 늦어졌다는 등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번쯤은 곰곰이 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박중돈(법정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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