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최초의 한국 유학생 윤치호는 쓰러져가는 조국의 아픔을 곱씹으며 미국에 발을 디뎠다. 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는 에모리 대학에서 서구문물을 배우며 국운 회복을 꾀했다. 이후 1950년대부터 이홍구(전 국무총리), 이성호(김대중 전 대통령 처남), 남기철 목사 등 유학생들이 애틀랜타에서 한인 이민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해 나갔다. 그로부터 애틀랜타 강산이 다섯 번 바뀌었다. 한인사회는 다섯 번 이상 변했다. 팽창일로를 달려온 애틀랜타 한인사회의 앞날은, 그러나 장밋빛이 아니다. 미국 경기침체의 먹구름 때문 만은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인사회 내부에 있다.
뒤돌아보면 애틀랜타 한인타운이 걸어온 길은 길지 않으나 그 걸음은 숨가빴다.
▣ 70년대 초기 타운형성기 = 1960년대까지 수백명에 지나지 않던 한인 인구가 1천명대로 늘어나며 ‘한인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한인상가가 생겨났고 최초의 한식당이 문을 열었다. 74년부터 3년간 시카고 이주자들의 영향으로 한인 인구가 급속히 불어났다. 최초의 한인 교회였던 애틀랜타한인교회도 이때 출현했다.
▣ 80년대 한인단체의 형성 = 한인 인구가 5천명 수준까지 늘어났고 한국어 일간지가 등장했다. 1987년 뷰포드 하이웨이 선상에 ‘코리아타운’ 쇼핑센터가 생기면서 뷰포드 한인타운의 시대가 열렸다.
뷰포드 도로를 중심으로 한인상권이 형성되면서 캅카운티와 스톤마운티 지역에 한정됐던 한인 거주지가 노크로스 지역으로 이동, 귀넷카운티 신규 주택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90년대 한인타운 발전기 = 뷰포드 한인타운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도소매 업체의 진출이 활발해졌다. 한인 인구는 2만 5천여명 수준으로 불어났고 서비스업종 및 자생 브랜드 네임을 갖춘 한인 업체들이 부를 축적해갔다.
한인들의 거주지를 따라 상권 역시 일부 둘루스 지역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없어진 식료품점 ‘한강’을 선두로 일부 식당과 부동산, 소매점 등이 북상을 주도했다.
▣ 2000년대 양대 한인타운 시대 = H마트 및 아씨플라자 등 대형 식품점의 출현으로 둘루스 한인타운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둘루스와 스와니 지역 곳곳에 한인상권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호황으로 투자유치가 활발해졌고 각종 개발계획 등이 연일 발표됐다. 추정 인구는 8만~10만. 대한항공이 주7회 직항편을 운행할 만큼 물류량이 늘었다. 특히 한국 대기업들의 진출로 한인사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동남부 6개주 한인의 허브타운으로
“애틀랜타 한인은 10만이 넘어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특수를 계기로 코리아타운의 크게 커졌거든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동산붐을 타고 미국 타주에서 한인들이 앞다퉈 몰려들기도 했죠” 스와니에 사는 제이콥 박씨의 목소리가 당당하다.
한인타운은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호황으로 성장에 호재를 맞았다. 또 인근 앨러배마에 들어선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진출로 최대 수혜지가 되고 있다.
특별히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들은 유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동남부 지역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기러기 가족을 비롯한 이주민, 기업 주재가정 등 타지에서 몰려든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작은 시골이나 다름없던 애틀랜타 한인 타운이 이처럼 급성장한 데에는 지리적인 이점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 동남부의 중심 도시로서 미국 동부와 남서부, 중서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인근 동남부 7개주의 허브도시로서 교역활동의 주요 무대이기 때문이다. 한인타운 역시 이러한 배경 속에 빠른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반목, 갈등 그리고 차이나 상권의 추격
애틀랜타 한인사회에는 대형마트5개 있다. 멀잖아 6개가 더 생길 예정이다. 과열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한인들은 어떤 한인상점이 잘되면 가까운 근처에 똑 같은 상점을 차린다. 서로 제살 깎기 경쟁을 하다 결국 함께 망하기 일쑤다. 중국인은 다르다. 중국인은 맨 처음 은행을 진출시킨다. 그 은행이 들어선 상가건물은 곧이어 차이나타운이 된다. 결집해 함께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한인들이 중국인만큼의 응집력을 보인다면 한인타운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크다” 사업을 하는 한 한인의 자조어린 푸념은 새겨들을 만하다.
차이나 타운 역시 도라빌에 이어 둘루스 지역으로 북상중이다. 이미 도라빌 한인상권 대부분이 중국인들의 손에 들어 간지는 오래. 뷰포드 한인타운이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때부터 이미 타운 건물주들은 중국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개발업자 박 모씨는 “뉴욕이나 워싱턴 할 것 없이 한인들은 힘들게 터를 닦은 후에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채 스스로 와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라빌 한인타운 역시 조지아 최고의 교통 중심지로서 개발 이점이 충분히 남아 있는데도 한인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북상’을 선택, 기반 상권만 잃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플레즌힐 로드와 세틀라이트 블러바드, 올드 노크로스 로드가 만나는 삼각지대 일대 42에이커 샤핑몰을 중국계 개발업자가 사들였다는 소식을 주목할 만 하다. 이곳은 ‘아시안 갤러리아’ 라는 이름으로 중국계 대형 식품점과 의류상가 ‘어패럴마트’, 은행, 각종 소매점, 식당 등이 자리해 실질적인 둘루스 차이나 타운 형성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둘루스 한인상권의 중심지에 중국계 샤핑센터가 들어선다는 이유에서 한인들은 또다시 우려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젠 한인 대표기업을 키울 때
역동적으로 성장해온 애틀랜타 한인사회 역시 소수계 이민자로서의 고충이 쓰라리다.
미국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끼리끼리’의 민족성은 정치력 부재로 이어졌다. 자녀교육을 중시하지만 생활에 쫓겨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가정이 적잖다.
마약이나 도박과 같은 사회병폐, 가정불화 문제가 늘어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한인사회에게 닥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력 성장이다. 자영업 이상의 대표 기업을 키우고 한인타운이 아닌 미국 주류무대에서 활동하는 한인 기업들의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인타운이 외적으로 성장한데는 외부 자본 유치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이제는 현지에서 일어난 자생기업들이 성장의 제2원동이 되어야 한다 한인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인사들이 입을 모은다.
경제적 자생력 부족은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비영리 기관들의 재정 부족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사회와 동떨어져 활동해온 단체들은 주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채 재원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태인협회가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지역문화센터를 건립한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한인 단체장들은 정부 그랜트 획득을 목적으로 활동을 체계화하고 있다면서도 자원봉사자들에게 기대야 하는 현 시스템으로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며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위상은 차츰 높아지고 있다. 다방면에 걸쳐 한인들의 진출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한인기업들을 대상으로 미국 시장 마케팅 방법을 전수하겠다고 나선 한 컨설턴트는 둘루스시가 한인들의 영향으로 너무나 많이 바뀌고 있다며 많은 주민들이 한국어 간판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색다른 상품과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직에 출마한 정치 후보자들도 한인들의 표를 의식하고 있다. 한인 로비스트들은 아직까지 한인후보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분명 정치력 신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며 기회를 살려 경제력과 함께 문화, 사회 정치력을 함께 키워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정치력 신장과 경제력 증강, 한인타운이 두 날개를 달기 위해 먼저 한 몸으로 뭉쳐야 한다.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 앞에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서 있다.
<황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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