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투자자 없어 영화 제작무산… 방송 비상경영·드라마 폐지
이보다 추울 수는 없다.
세계 경제 위기가 연예계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영화 가요 방송 등 각 분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침체기를 맞곤 했지만 이처럼 동시에 찬바람이 부는 것도 이례적이다. “IMF 때보다 훨씬 심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연예계에서는 살 길을 찾아 저마다 허리띠를 조르고 있다.
#영화=돈줄이 말랐다
“펀드에 손을 댔다 기천여 만원을 날렸다.”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
오죽하면 배우들조차 인터뷰 말미에 이같은 푸념을 늘어놓을까. 영화를 찍기도 어렵고, 찍은 뒤 흥행도 어렵다. 그나마 일 하는 것은 행운. ‘개점휴업’일 때에는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한다. 2006년에는 “영화를 못 찍으면 바보다” “카메라가 모자란다”고 할 정도로 바빴다. 요즘은 감독 스태프 등 영화 관계자들도 부업거리를 찾아 방황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영화계의 찬바람은 잇단 제작 위기로 먼저 가시화됐다. 김아중이 고심 끝에 택한 복귀작 <29년>의 제작이 사실상 무산됐다. ‘외압설’은 차치하고라도, 제작을 눈 앞에 둔 상황에 투자사들이 투자 의사를 철회했다. 결혼한 한류스타 1호 권상우가 주연을 맡아 떠들썩하다 하차한 <내 사랑 내 곁에> 역시 투자 문제가 갈등의 원인이었다. 투자 여부를 불안해 하던 권상우 측과, “투자는 거의 다 됐다”는 영화 제작사 간의 입장 차이가 컸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문제도 많다. 한 배급사는 모회사의 문제로 수입사에 이익을 배분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투자사는 영화 스태프에 지급해야 할 돈을 미루다 스태프의 파업으로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대규모 투자 배급사도 찬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흥행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인디아나 존스> 등을 배급한 CJ엔터테인먼트가 내년 기대작 <박쥐> <마더> <전우치> <트랜스포머2> 등 라인업을 내놓아 홀로 달려가고 있다. 경쟁사 쇼박스의 경우 지난 여름 이후 신규 투자를 하지 않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12월 개봉하는 <과속 스캔들> 외에는 외화 배급만 하는 등 투자를 축소하는 분위기다.
투자가 위축되니 제작이 줄어드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유명 제작사의 경우 톱스타급 남녀 배우를 캐스팅해 놓고도 투자자가 나서지 않아 제작을 포기하기도 했다. 진정성 있는 작품에 주력했던 제작사 대표조차 “공포나 에로 등 돈 되는 영화만 해야 겠다”고 한숨을 쉴 정도다. 최근 홍상수 감독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촬영하며 고현정 김태우 등을 개런티 없이 기용하며 제작비를 절감하기도 했고,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 30억원에 못 미치는 15억원대 영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화계는 2006년 양적 팽창에 이어 지난해부터 이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터라 배우들은 일찌감치 TV 드라마로 선회했다. 대부분 시청률 저조로 이어져 뮤지컬로 방향을 돌리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강한섭 영화진흥위원장이 올해 한국 영화 제작편수가 40편이라는 점에 심각하다는 규정을 하고 뒤늦게 무려 8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고 공표했지만, “이런 분위기에 어디에서 800억원을 가져오냐”는 것이 영화계의 볼멘소리다.
#가요=안으로 안으로
“네? 진주요? 그 돈으로 진주까지 가면 저희 차비랑 댄서랑 코디비 빼면 남는 게 없는데 어쩌죠?”
스타급 가수의 매니저는 최근 울며 겨자먹기로 행사 섭외를 거절했다. 불경기라 거마비는 줄어드는 반면, 물가가 올라 진행비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적은 액수라도 서울 근교 위주로 행사 계획을 짜게 된다.
가요계에서는 가을 들어서 새로 얼굴을 내미는 신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룹 2PM처럼 대형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가 내놓는 신인 그룹 외에는 중견 가수들이 가요계를 꽉 채우고 있다. 신승훈 김건모 비 동방신기 김종국 박기영 손호영 M 등 기존의 가수들이 동시에 컴백했다.
경기 불황으로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해외로 뮤직비디오 촬영을 나서거나, 외국에서 공연을 가지는 가수들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신인을 띄우기 위해 종종 사용됐을, 스타를 기용한 해외 로케이션 뮤직비디오는 찾아볼 수 없다. 그룹 다비치의 강민경, 쥬얼리의 김은정,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나르샤 등 기존 가수들이 신인가수의 발표 예정곡을 미리 부르는 <병원에 가다> 프로젝트처럼 아이디어로 승부하고, 품앗이로 경제 위기를 이겨낸다는 전략이다.
앨범 유통 역시 CJ 계열 엠넷미디어, SK 계열 로엔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 관련 유통사 외에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3년 전 신규 유통사로 급부상한 곳의 경우 현재 소속 가수의 앨범도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국내 가수의 앨범에 해외 스태프가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다. 보다 나은 음질을 위해 미국에서 녹음하거나, 유명 엔지니어를 한국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환율이 오른 상황에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류 붐을 타고 아시아 지역에서 거의 매주 열리던 한국 가수의 공연도 현저히 줄었다. 올 가을 중국과 일본에서 공연을 준비 중인 앤디의 경우 특수한 예. 이처럼 일부 환율 상승으로 현지 수익이 증가하는 가수의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진행비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가수들이 훨씬 많다.
#방송=비상경영이다
“광고 상황이 IMF 때보다 2배 이상 심각합니다”
지난달말 MBC 엄기영 사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SBS KBS 역시 20% 이상 광고가 빠졌다. 막대한 제작비를 뽑아내고도 남았던 광고가 위축됐다. 기업들이 몸을 줄이면서 광고비를 낮췄고, 결과적으로 각 방송사들이 비상 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있다.
MBC는 <내 여자>를 끝으로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를 폐지하기로 했다. KBS 2TV는 지난 6월 신설했던 저녁 일일드라마를 없애기로 했고, SBS 역시 금요드라마 대신 <웃찾사>를 편성하기로 했다.
MBC측은 9월 광고매출이 작년에 비해 80억 원 줄어들고, 10~12월 석 달 동안의 광고매출은 작년보다 500억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최대한 긴축재정을 펼치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KBS는 올해 광고 수입이 줄어 900억원 가까운 적자가 예상되고 SBS 역시 1/4분기 광고수익이 450억원 줄어 ‘비상 경영체제’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따라 각 사는 가장 먼저 드라마를 폐지하며 허리띠를 조르고 있다. 배우들이 드라마 한 편 출연료로 편당 수천만원대를 받아 총 2억원 가까운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드라마에 비해 적은 제작비로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일부 방송사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외부 MC를 줄이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 유명 MC의 경우 회당 800~900만원 출연료를 받는다.
영화 드라마 등 제작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배용준처럼 엔터테인먼트 상장사를 갖고 있는 스타의 경우 주식 폭락 사태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배용준은 카이스트의 주식 지분 34.6%를 보유하고 있으나 연초 228억9,000만원에서 최근 69억원으로 1/3 이하로 감소했다.
스포츠한국 이재원기자 jjstar@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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