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연기자의 60.2%가 성 접대 제의를 받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조사 발표에 대해 연예계는 27일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번 조사 결과가 연예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낸 것이라고 지적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실체가 없는 조사로 여배우와 연예계 전체의 인권이 매도됐다는 목소리도 강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하 ‘한예조’)의 문제갑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런 문제는 연예계의 구조적 병폐로 접근해야 하며 그 최정점에는 지상파 방송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캐스팅과 편성 권한을 쥐고 있는 방송사 드라마 PD들이 권력을 이용해 힘없는 연기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문 의장은 "이런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데 해결책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방송사는 항상 빠진다. 대책 수립을 위한 세미나 등의 자리를 마련해도 방송사의 의견은 안 나오는데 그래서야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조사에 참여한 한예조 소속 111명의 여배우들은 성 접대 상대로 재력가, PD, 제작사 대표, 기업인, 광고주, 방송사 간부, 기획사 대표, 정관계 인사 등을 지목했다. 또한 응답자의 45.3%는 이들로부터 술 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KBS, MBC, SBS 드라마국의 고위 간부들은 일제히 불쾌하다는 반응과 함께 이번 조사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범죄 행위가 있었다면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할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증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KBS의 고위 간부 A씨는 "구체적 사례가 있으면 내놓고 수사를 정식으로 의뢰할 일이지 이런 식으로 선정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게 말이 되냐"며 "구체적인 물증 없이 이런 결과를 내놓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구의 인권도 보호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A씨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일부 처신을 잘못하는 PD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치 방송계 전체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SBS의 고위 간부 B씨도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범죄 행위가 있었다면 수사를 의뢰하고 조사해야지 루머만 확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MBC의 고위 간부 C씨는 "굉장히 과장된 조사 같다. 통계가 어떻게 나왔는지 의문"이라며 한예조의 반응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C씨는 "한예조가 그동안 PD 비리를 여러 차례 문제 삼았지만 실제로 규명된 것은 거의 없다"며 "내가 지난 몇십 년간 일하면서 보고 들은 것에 따르면 그들의 문제 제기는 상당히 과장됐다"고 말했다.
연예계도 서로 다른 반응을 내놓았다.
한 조연급 여배우는 "내가 매니저가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캐스팅을 미끼로 실제로 술자리로 수시로 불러내는 PD나 광고계 관계자들이 있다. 일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은 자리에도 종종 나가는데 당연히 유쾌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신인 여배우 2명을 관리하는 한 매니저는 "일부 PD들은 노골적으로 캐스팅을 미끼로 신인 연기자들을 술자리로 불러내는 게 사실이다. 또 가끔 재력가로부터 스폰서 제의도 받는다"며 "권력, 재력이 있는 자들은 연예인들을 가까이 두고 싶어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스폰서로부터 돈을 받아 기획사를 운영하는 군소 매니지먼트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 등은 이번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연매협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인권위에서 우리 쪽에 조사에 참여해달라고 왔었는데 조사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참여를 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장자연 자살 사건 때도 극히 일부의 문제가 연예계 전체 문제로 확대됐는데 이번에도 그럴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스타급 여배우를 다수 관리하고 있는 연매협의 간부 D씨는 이 문제가 여배우들 전체의 인권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D씨는 "기본적으로 조사라면 표본이 정확하고 모집단에 대한 대표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조사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여배우 전체의 명예와 인권을 훼손한다"며 "이러한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성 상납, 술시중 문제는 연예계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D씨는 "남녀가 함께 사는 세상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문제다. 정치권, 언론계라고 자유롭냐"면서 "그런데 왜 연예계만의 문제인 것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설사 연예계에 문제가 있어도 그야말로 극소수의 잘못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