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하녀’서 전도연의 상대역 ‘훈’ 역할
"’하녀’는 제대로 된 성인 역할을 하게 해준 고마운 영화입니다."
이정재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전에는 ‘하녀’에 나오는 훈과 비슷한 역할을 하면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울리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이제부터 진짜 성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SBS 드라마 ‘공룡선생’(1993)으로 데뷔한 이정재는 이제 17년차 연기자다. 1994년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로 ‘하녀’까지 영화만 열여섯 작품을 했다. 중견 배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경력이다.
데뷔 때부터 그는 늘 주인공이었다. ‘박대박’(1997), ‘태양은 없다’(1999), ‘시월애’(2000), ‘태풍’(2005), ‘1724 기방난동사건’(2008)까지 그는 원톱 아니면 투톱 주연이었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의 신작 ‘하녀’에서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이정재는 "나오는 장면이 별로 없어서 내가 나오는 모든 장면에 애착이 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그의 비중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크지 않다는 얘기다.
"배우란 주인공이냐 아니냐에 따라 민감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비중이 정말 작았어요. 게다가 캐릭터 자체도 호감 가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망설였죠."
하지만 작가주의와 상업주의 영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임상수 감독에 대한 믿음은 그의 ‘하녀’출연 결정에 큰 밑거름이 됐다. "좋은 영화에 항상 이정재가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도 주인공을 하느냐 마느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고심 끝에 택한 선택의 결과는 어떨까. 이정재는 "’이 영화 참 잘 선택한 것 같다’는 평가를 듣겠다"며 웃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고(故) 김기영 감독(1919-1998)의 역작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임 감독의 리메이크작은 중산층이 파괴되고, 빈부 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우리 사회의 스산한 풍경을 은이(전도연), 훈(이정재) 등의 인물들을 통해 그렸다.
이정재가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지만 강렬하다. 사람을 멸시하는 듯한 조소와 노골적인 언사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장모에게 막말을 하기도 한다.
"’근본이 천한 놈은 어쩔 수 없다니까’라는 대사가 있어요. ‘제가 그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비록 연기였지만 음담패설을 담은 대사를 내뱉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죠."
이정재가 와인을 맛보는 장면도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다. 잔을 흔드는 것부터 향을 맛보는 모든 과정이 와인 전문가를 뺨친다. 피아노를 치는 장면도 매우 자연스럽다.
"와인을 마시고, 피아노를 치는 것은 고상하게 살고 싶어하는 훈을 대변하는 행동입니다. 와인은 원래 좋아해서 잘 알고, 영화를 위해 연습도 좀 했어요. 피아노는 원래 못 치지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곡의 진행과정은 잘 압니다."
전도연과의 베드신에 대해서는 "맥락상 당연히 벗고 나왔어야 했을 부분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동년배 전도연에 대해서는 "연기 참 잘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촬영하다 보면 연기자라면 욕심내는 장면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연기가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오버’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어요. 전도연 씨는 그런 걸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전혀 욕심 없이 마치 ‘은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된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정재는 최근 감정을 분출하는 연기보다는 자연스런 연기에 관심이 더 간다고 말했다.
"인생극장에 나오는 ‘다큐멘터리’ 같은 연기가 좋아요. ‘크레이지 하트’로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제프 브리지스도 노래 몇 곡 부른 게 전부인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나면 울림이 대단하잖아요. 그런 연기에 요즘은 관심이 갑니다. 전도연 씨의 연기도 그러한 종류의 연기였죠."(웃음)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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