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들 뒤에 숨은 공로자는 작곡가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김형석, 윤일상, 조영수 등 유명 작곡가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내걸고 음반을 발표하면서 전면에 나서는 것이 보편화하고 있다.
MC몽의 콤비로 유명한 14년 경력의 작곡가 김건우도 ‘블루 브랜드(Blue Brand)’라는 타이틀로 이 대열에 서 있다.
지난해 첫 음반 ‘블루 브랜드:트웰브 도어스(12 DOORS)’의 성공에 힘입어 최근 두번째 음반 ‘블루 브랜드:트라우마(Trauma)’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가 보컬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그가 작곡한 곡을 MC몽,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제아와 미료, 케이윌, 김진표, MC스나이퍼, 슈프림팀, 도끼 등 유명 래퍼들과 보컬리스트들이 노래해 담았으며 최근 6곡을 먼저 공개했고 전체 수록곡을 내달 음반으로 발매한다.
최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건우는 "작곡가는 빛나는 가수의 뒤에 숨은 사람"이라며 "한번쯤은 내가 가진 재능으로 빛나고 싶은 꿈이 있다. 내 그릇에 내용물을 담아 내 이름으로 음악을 알리고 싶은 작은 소망"이라고 작곡가들이 음반을 내는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의 음반인 만큼, 특정 가수를 위해 곡을 쓸 때와 달리 음악 장르와 노랫말의 테마 등 창작 과정에서 훨씬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자유롭기에 행복한 작업이었죠. 어떤 가수에게 맞는 곡을 쓰는 게 아니라, 제가 만든 음악에 맞는 가수를 캐스팅하니 작업 과정이 달라요. MC몽의 프로듀서로는 그에게 시도할 수 없는 영역이 있어요. 하지만 이 음반에서 곧 공개될 MC몽의 곡은 히사이시 조의 애니메이션 음악처럼 동양적인 하우스 곡이죠. 제 음반이어서 가능한 일이에요."
이번 음반의 주제는 트라우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의미하는 의학 용어지만 그의 음반에서는 이별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아픈 사랑의 기억을 의미한다. 참여 래퍼들은 김건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했던 기억을 되살려 경험담을 랩 메이킹에 담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희미해질 뿐"이라며 "어떤 계기로 그 기억, 그 시간대로 돌아가지 않나.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곡들은 발라드, 펑키, 록 등 다양한 장르의 멜로디에 때론 도시적이고, 때론 시적으로 사랑을 얘기한 랩이 얹어져 음악 팬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타이틀곡은 케이윌이 피처링한 김진표의 ‘아무 말도 하지마’로, ‘이렇게 네가 떠나갈 줄 알았다면 당장 죽는다 쇼라도 한번 미친척 해볼걸’이라는 김진표의 직설화법 랩이 매력이다.
MC스나이퍼가 참여한 ‘트라우마’는 물망초의 꽃말 ‘나를 잊지 말아요’가 테마로, 별의 보컬이 더해져 사랑의 아픔이 애절하게 표현됐다.
김건우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중 새벽 동이 트는데 눈이 많이 날리더라"며 "그때 ‘잊지 마요, 날 잊지 말아요’란 노랫말과 함께 멜로디가 입에서 나왔다. 멜로디를 잊어버릴까봐 휴대전화에 녹음하고 다음 날로 곡을 썼다"고 말했다.
언더그라운드 유명 래퍼 도끼가 랩을 한 ‘비누향기’는 과거 연인을 떠올리면 그의 향기가 다시 살아난다는 내용을 경쾌한 멜로디에 담았다.
김건우는 MC몽의 ‘아이 러브 유 오 생큐(I love u, oh thank u)’, ‘소 프레시(So Fresh)’ 등 대표곡에서 보여줬듯이 랩이 첨가된 음악을 유난히 좋아한다. 이런 스타일이 김건우 하면 떠오르는 음악들이 됐다.
"전 랩을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힙합 프로듀서라고도 할 수 없죠. 그럼에도 제가 랩과 보컬이 결합된 음악을 고집하는 것은, 멜로디에 농축된 가사를 담고 랩에 서술적인 이야기를 넣어 대중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블루 브랜드’의 음악은 미국에서 건너온 소위 힙합의 정통성에는 어긋나는 음악"이라며 "하지만 펑키, 재즈, 트로트에도 랩을 얹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보여줘 힙합을 정형화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김건우의 음악이 힙합이냐’고 하는데 내 마음속에는 이게 바로 힙합"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한 그는 이번 음반 작업을 하면서 15년째인 자신의 음악 활동을 돌아봤다고 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 편곡을 주로 해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들리는 10곡 중 9곡은 내가 편곡을 한 곡이었다"며 "작곡가로 이름을 가요계에 알리고 인생을 바꿔 준 게 바로 MC몽"이라고 말했다.
또 수년째 아이돌이 대거 등장한 음악 시장에 대해서도 작곡가로서 애정이 어린 한마디를 했다.
"제가 아이돌 음악을 자신있게 못한다고, 아이돌 음악이 나쁘다고 치부하면 안돼요. 단지 특정 시기마다 장르가 쏠리기보다 여러 장르가 공존하길 희망하죠. 지금 가요계는 사람의 몸으로 보면 몸은 말랐는데 팔뚝이 비대해진 느낌이에요. 내일은 또 다리가 비대해질지 모르니 몸이 균형있게 자라길 바라는거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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