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야 말로 많은 분께 연기를 제대로 보여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한은정(30)의 목소리에서는 뿌듯함이 은은하게 묻어났다.
24일 밤 종영하는 KBS 2TV 납량특집 사극 ‘구미호-여우누이뎐’의 마지막 촬영을 이날 오후까지 전북 고창에서 진행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라는 그는 "끝까지 촬영이 재미있어서 피곤한 줄 모르겠다. 이제부터 쉬면 된다"고 밝게 말했다.
그날 찍어 그날 방송하는 우리나라의 ‘생방송 드라마’ 체제에서 ‘구미호-여우누이뎐’ 역시 엔딩 장면을 방송 10시간 전에야 마치는 힘든 스케줄을 소화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준 한은정은 기운이 절로 나는 듯했다.
"대본이 마지막 신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마음에 쏙 들었어요. 정말 슬펐고 재미있었습니다. 또 함께 출연한 분들이 너무 연기를 잘해서 NG도 거의 없이 촬영을 진행했어요. 다들 집에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날씨가 너무나 더웠음에도 촬영이 늘어지지 않고 빨리빨리 돌아갔습니다."
이 드라마는 구미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남자를 유혹해 간을 파먹는 요물이 아니라, 인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완전한 구미호가 되는 10살까지 인간 세계에 머물며 딸을 보호하는 ‘어미 구미호’를 조명한 것이다.
한은정은 "엄마 연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엄마가 될 것이라 그런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며 "캐릭터에 몰입해 100% 진솔하게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극 중 딸 연이가 진짜 딸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정말 딸이 너무 예뻤다"고 말했다.
인간의 탐욕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또 딸을 잃은 후에는 복수를 위해 구미호는 많이도 울었다. 덕분에 한은정은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너무 많이 운 것 같아요.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감정 신이 많았고 눈물도 많았습니다. 구미호가 나약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전 그런 구미호의 인간적인 모습과 모성애가 마음에 들었어요. 다만, 연기하는 내내 구미호가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어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잖아요. 그토록 인간이 되고 싶어했지만 결국은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도 그렇고요. 저 역시 이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인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어요."
이처럼 구미호를 색다르게 해석한 전략 덕에 이 드라마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고 MBC ‘동이’, SBS ‘자이언트’와의 대결에서도 10%대 초중반의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구미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많이 관심 있게 봐주신 것 같아요. 우리 드라마를 계기로 구미호의 새로운 버전이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요?"
색다른 스토리는 연기자들의 호연과 만나 빛났다. 무엇보다 그간 대표작 없이 섹시함으로 어필해온 한은정은 이 작품으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과 성장을 보여줬다.
"대본을 보는데 첫눈에 느낌이 딱 왔어요. 인간으로서 단아하고 청초한 모습과 구미호로서 섹시한 팜므파탈의 모습, 그리고 절절한 엄마의 모성애를 두루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라 마음에 무척 들었어요. 이런 느낌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제 연기도 예전과 달랐던 것 같아요. 또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나이를 먹고 조금은 성숙해진 때에 이런 캐릭터를 만나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눈이 많이 깊어졌다’는 칭찬을 하시는데 제가 눈을 어찌 한 건 아니고, 캐릭터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연기가 편안했던 것 같아요.(웃음)"
마음에 드는 역할을 맡아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더위는 고통스러웠다. 올여름 유례없는 폭염 속에서 한복 입고 촬영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제가 더위를 별로 안 타는데 올해는 엄청난 폭염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우리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무서워하며 서늘해하시는데 연기자들은 정말 쪄 죽을 뻔했어요.(웃음)"
그런데 그는 드라마 종영과 함께 더 더운 곳으로 간다.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것.
"다음 달 초 앙골라로 떠나요. 돌아오면 차기작을 물색해야죠. 쉬고 싶지 않아요. 연기적으로 욕심이 많이 나요. 이 작품을 기점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고 연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많은 작품을 하며 쉬지 않고 달리고 싶습니다."
pretty@yna.co.kr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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