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 ‘가시나무새’ 등 가족과 핏줄의 의미 재조명
"천륜이 별거드냐. 바뀌어 살았기에 이렇게 좋은 아들을 얻을 수 있었다. 천하를 준다고 해도 천둥이와 널 바꿀 생각이 없다. 내 아들아."
지난 12일 MBC ‘짝패’의 도입부에서 김진사(최종환 분)가 귀동(이상윤)에게 한 말이 시청자의 가슴을 때렸다.
20여 년을 고이 키운 아들 귀동이 사실은 유모의 농간으로 바뀐 유모의 아들이며, 거지 움막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란 천둥(천정명)이 자신의 친아들임을 알았지만 귀동이에 대한 김진사의 부성애는 흔들리지 않았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지만 드라마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인지상정, 극적 클리셰를 배반하고 천륜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인간적 고뇌를 그리며 허를 찌르는 진한 감동을 전해줬다.
‘짝패’는 이날 전국 17.1%, 수도권 19.1%의 시청률로 경쟁작인 SBS ‘마이더스’, KBS ‘강력반’을 따돌리고 월화극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최근 가족과 핏줄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드라마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와 맥을 같이하면서도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기른 정’과 ‘얼굴 맞대고 사는 이웃으로서의 가족’의 의미를 파고들며 가볍지 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피보다 진한’ 가족 = KBS 수목극 ‘가시나무새’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3대가 등장한다.
명자(차화연)-정은(한혜진)-한별이다. 정은은 명자를 엄마라고 부르고, 어린 한별이는 정은을 ‘우리 엄마’라고 하지만 이들은 같은 핏줄이 아니다. 그럼에도 진짜 가족보다 더 진한 정을 나눈다.
이중 한별은 명자의 친딸 유경(김민정)이 낳았기 때문에 명자와 한 핏줄이다. 하지만 명자는 뒤늦게 유경이가 나타났음에도 정은을 위해 한별을 유경이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손녀를 버리고 떠난 친딸 대신 6년간 손녀를 키워준 정은을 자신의 딸이자, 손녀의 엄마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가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 반면 실제로 한 핏줄임에도 남보다 못한 관계도 있다.
MBC ‘로열 패밀리’의 JK그룹 식구들은 겉으로는 가족이지만 안으로는 기업 후계구도를 둘러싼 경쟁자일뿐이다. 서로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래서 이들을 지켜보는 고아 출신 변호사 지훈(지성)은 JK그룹 막내딸 조현진(차예련)에게 "난 고아고 넌 재벌인데 둘 다 가족이 없다. 그래서 둘 다 불쌍한데 더 정확히는 네가 더 불쌍하다"고 꼬집는다.
SBS ‘마이더스’의 인혜(김희애)도 배다른 오빠들과 유성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피도 눈물도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현실에서도 흔히 보는 돈 때문에 벌어지는 재벌가의 치열한 후계구도 경쟁을 대변하고 있다면, 가족이 지긋지긋한 존재인 경우도 있다.
‘마이더스’의 도현(장혁)은 평생 자신과 엄마를 버려두고 밖으로 나돈 아버지 태성(이덕화)을 오랜만에 재회하자 "아는 척하지 말라"고 차갑게 대하고, MBC ‘반짝반짝 빛나는’의 정원(김현주)도 뒤늦게 찾은 친부모가 빚에 쪼들리는 가난한 처지라는 것을 알자 "그들이 우리 부모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서럽게 운다.
◇"얼굴 맞대고 살면 그게 가족" = KBS ‘웃어라 동해야’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안나(도지원)가 양부모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자라고, 그가 아들 동해(지창욱)와 함께 수십 년 만에 찾은 낯선 한국에서 생면부지인 봉이(오지은)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살면 그게 진짜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뒤늦게 아이가 뒤바뀐 사실을 알게됐다는 같은 설정의 ‘짝패’와 ‘반짝반짝 빛나는’은 ‘기른 정’ 역시 ‘낳은 정’ 못지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감동을 전해준다. 이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한국 드라마 속 뒤바뀐 운명의 아이들이 운명이 밝혀지는 즉시 제자리를 찾아야했던 것과 대비된다.
‘짝패’의 김진사는 "차라리 몰랐으면 될 것을 내가 왜 알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세상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목숨보다 귀한 내 아들이다"는 말로 귀동에게 기른 정을 표현한다.
‘반짝반짝 빛나는’의 한사장(장용)도 30년 고이 키운 정원에게 "넌 누가 뭐래도 내 딸"이라고 했고, 정원의 친부에게는 "정원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전개는 핵가족을 넘어선 1인 가족, 재혼 가정, 입양아, 다문화 가정 등 우리의 전통적 가족상이 급속히 해체되는 현실 속에서 현실의 반영이자, 가족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고찰과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KBS 배경수 드라마 CP는 "가족 관계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지금은 같은 소재라고 해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감을 더 끌어내는 보편성이 생긴 것 같다"라며 "작가들이 그러한 소재를 통해 새로운 가족상,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면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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