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따돌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불리(Bully)’를 놓고 관람등급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따돌림으로 인한 피해 학생과 그 가족들, 가해 학생들, 따돌림이 벌어지는 학교 현장에 대해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미국 영화협회 (MPAA, Motion)로 부터 R(Restricted)관람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R 등급은 통상적으로 정사장면이나 폭력장면이 등장해 청소년이 보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영화에 적용되는 등급이다. R 등급의 대표적 영화로는 샤론 스톤이 주연한 ‘원초적 본능’, 잔인한 살인 장면이 등장하는 ‘양들의 침묵’, 술, 마약, 섹스, 나체신 등이 등장한 가장 최근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X’ 등이 있다.
미국내 영화 심의를 담당하는 MPAA측은 ‘불리’를 R 등급으로 규정한 이유가 다름 아닌, 영화에 등장하는 ‘욕설’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다큐멘터리의 제작자 측에서는 이 영화가 학교의 따돌림을 다룬다는 소재의 특성과 현실을 전달한다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하는 ‘욕설’ 부분을 편집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로써 오는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불리’는 18세가 되지 않은 학생들은 부모와 동행하지 않고는 관람이 불가하고, 학교에서의 상영 역시 불가하다. 이에 따라 각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은 ‘불리’의 R 등급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가하면, 사회문화 단체 그리고 영화계에서까지 다큐멘터리 ‘불리’의 재등급을 요구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가 미국의 교육현장과 학교의 현실을 다룬 것이라면, 당연히 이를 봐야 할 관객 중 하나는 학생들이다. 고등학생들 마저 이 다큐멘터리를 볼 수 없는 현실이라면, ‘불리’에 대해 진단하고 바로 잡겠다는 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 다큐멘터리를 기다리며 학교에서 관람을 기획했던 교육자와 학교 당국들에게조차 ‘불리’는 상영, 관람이 불가능한 영화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영화, 공연, 게임, 출판물에 대한 검열은 늘 있어 왔다. ‘표현의 자
유’라는 인간의 기본권에 맞서왔지만, 음란물과 폭력물로 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제 때문에 ‘음란성’ 규정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살짝 회피되어 왔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장치의 경계가 보장된다면 ‘표현의 자유’마저도 양보할 수 있다는 이른바 편의적 적용이 묵인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검열이라는 동전의 양면이 공존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불리’는 이런 기본적인 편의에 기초한 규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폭력으로 부터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영화 심의 등급과 학교의 따돌림이라는 폭력으로 부터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다큐멘터리 ‘불리’의 합의점은 어디인가. 따돌림 현실을 인정하고 자각하여 이로 부터 학교를 지켜내고 아이들을 지켜내겠다는 목적의 다큐멘터리가 영화에 등장하는 욕설 때문에 아이들이 못 보게 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학교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수업시간과 웃음이 가득한 점심시간, 방과 후 즐겁기만 한 스쿨버스 내 광경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현실은 락커에 칠해진 욕설과 점심 도시락을 빼앗기는 굴욕과 발로 걷어차이는 스쿨버스 안의 울음소리로 부분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용하는 욕설은 현실이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현실에는 등급이 없다.
학교 교육이 권위를 잃어가는 가운데, 학교 내 따돌림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아이들은 따돌림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따돌림이라는 병폐에 대해 부모와 교사와 아이들이 모두 함께 생각하고 대처할 수 있을 때, 아이들의 웃음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다큐멘터리 ‘불리’를 함께 보는 일이 될 것이다.
문선영/ 퍼지 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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