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대학에 교환학생을 지원하려고 하는 데요… 미국은 어떤가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가서 무얼 하고 싶은데?”
“영어공부도 하고, 제 전공 수업도 영어로 들으면서 공부하고 싶구요.” “졸업하면 어디서 무얼 할 계획이니?”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더 깊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꿈을 이루고 안 이루고의 결과는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한국으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들과 일도 하고 다른 문화도 경험해보고 싶어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영어연수를 가고 싶어하는 대학교 3학년 영문학과 학생과 잠시 나눈 대화다. 그리고 30분쯤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 인터뷰 질문은 어떤 게 나올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다음날 있을 인터뷰를 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녀는 이전의 나였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호주로 1년 영어 어학연수를 갔었다. 벌써 10년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난 일이다. 그녀와의 짧은 대화는 오래전의 나를, 켜켜이 쌓인 기억 저 아래 묻혀있는 나를 떠오르게 했다. 그래 그때 나도 저런 비슷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대학선배나 주변에 그런 경험을 한 누군가에게. 그땐 그게 꼭 이루어야만 하는 목표이기도 했고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꿈을 꾸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시기만 조금씩 다를 뿐 비슷한 목표를 이루고자 하고, 비슷한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사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처한 상황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남들과 매우 달라 보이는 경우라 할지라도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보면 비슷한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호주에서의 1년은 내가 꿈꿨던, 또는 현재 그녀가 꿈을 꾸는 그런 생활이었다. 영어도 공부했고, 또 다른 나라에서 온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문화를 경험하고, 내가 전공한 러시아 문학수업을 영어로 듣고, 영어로 번역된 러시아 소설들을 읽으며 밤을 새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까지. 호주에서의 경험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그녀의 꿈처럼, 그리고 내 꿈이었던 것처럼, 외국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일을 해왔다. 그렇게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미국에서 1년 영어연수를 한다고 갑자기 영어를 엄청 잘하게 되지 않을지도 몰라. 그리고 영어연수를 다녀온다고 갑자기 엄청난 기회가 생기지 않을지도 몰라. 그리고 막상 가면 기대했던 것보다 얻는 게 적을지도 몰라. 그리고 외국에서 일한다고 그것이 한국보다 더 좋은 건 아닐지도 몰라. 사람 사는 일이란 어디든 비슷하거든. 결국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도 해.”
그녀에게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이 말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얘기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깨달을 수 없는 일 또한 세상에는 많다. 목표를 이루어봐야 알게 되는 그런 것들. 그리고 해보지 않고서는 평생 회한처럼 가슴에 담아두게 되는 일들도 많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고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며 살아야해. 목표나 꿈을 이루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과정에서 깨닫는 것들이 사실 더 중요하니까.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그 순간이, 무언가를 다 이루어 버린 후보다 훨씬 더 큰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주기 때문에. 우리 모두 죽을 것을 알지만,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 또한 그게 아닐까.”
내뱉지 못한, 그녀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김진아 /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광고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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