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첩’이라고 하면 4대 대첩 즉 살수대첩, 행주대첩, 귀주대첩, 한산대첩이 떠올려진다. 주로 전쟁에서의 대승(大勝)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이번 연말, 한국의 처녀총각들을 설레게 만드는 생뚱맞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 중인데 ‘솔로대첩’이란 행사가 눈길을 끌었다. 서울, 부산, 제주 등 15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된 이 행사는 선남선녀의 짝을 찾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전파되면서 처음엔 수만 명이 참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수많은 인파로 인한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서울에선 400명, 전국적으로는 1,000명의 경찰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3시에 남자들은 하얀색, 여자들은 붉은색, 커플은 초록색 옷을 입고 여의도 공원에서 모였다. 남녀가 양편에서 대기하다가 진행자가 신호를 보내면 마음에 드는 이성을 향해 달려가 손을 잡는 것이었다. 실제로 몇 쌍의 커플이 탄생하기는 했지만, 안전을 이유로 여성들이 많이 참가하지 않아서 남성 700명, 여성 300명의 성별 불균형으로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한다. 전국에서 참가한 약 4,000명 중에서도 남성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기혼남성이 미혼인 척 참가하여 한 여성의 관심을 끌려다가 부인의 오해로 오히려 여성이 소송 당할 뻔한 사건도 있었고, 의류업체들이 흰색, 빨강색 옷과 스카프 등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행사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런 행사가 생겨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기 힘들고, 그 조건을 맞추기가 힘든 시대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결혼이 바로 ‘대첩’이다. ‘결혼 대첩’이다.
최근 들어 친구들의 자녀들이 하나둘 결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혼은 자연스레 우리의 단골 화젯거리가 되었다. 작년엔 한 친구가 아들 둘을 2개월 간격으로 결혼시켰다. 동창들은 그녀를 ‘장한 어머니’라며 존경해 마지않았다. 한꺼번에 두 아들의 살림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융자를 받았는데, 이자가 너무 버거워서 집값 높은 동네의 제 아파트를 전세주고 자기네 부부는 외곽지역의 값 낮은 전세로 이사하였다며, 그 차액으로 이자는 물론 원금도 조금씩 갚을 수 있다고 했다.
내년에 아들을 결혼시키는 한 친구는 아들의 직장이 있는 강남지역에 전세를 알아보는 중인데, 19평에 4억5천만원이라 했다. 요즘엔 집을 사는 대신 전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전세가 집값의 75%까지 뛰었다며, 웬만큼 산다는 자기네조차 자식들 집 마련이 어려워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했다.
한 친구는 딸이 유학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33살이 되었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느긋했는데 금년 들어 마음이 급해져 맞선을 자주 보게 한다고 했다. 직장 좋고 키 크고 예쁜 그 딸은 맞선 상대 대부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어쩌다 마음에 들면 그 상대가 연락이 없어 속을 끓이고 있다며 큰 한숨을 쉬었다
지난 7월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초혼연령은 평균 32.3세로 지난 20년 동안 3.9세가 많아졌고 여성은 30세로 4.4세가 많아졌다. 35세 이상 남성의 미혼 증가율은 10배나 급증했고 미혼 여성은 6.4배가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남성은 저학력일수록, 여성은 고학력일수록 미혼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한다. 남성은 자기보다 학력과 경제력이 낮은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은 학력과 경제력이 자신 보다 나은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그 추세에 한 몫 한다는 것이다.
함께 한국 방문 중인 남편이 옆에 앉아 한국 책을 열심히 읽다가 이 글에 곁눈질 하더니 전자사전을 뒤적인다. 그리고는 “아하, ‘대접’은 스프그릇, 대접살의 대접, 손님 접대란 뜻이네!”한다. “여보, ‘대접’이 아니라 ‘대첩’이랍니다”하고 정정했다.
한국어를 나름대로 열심히 꾸준히 공부하는 데도 남편에게 한국어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 대첩’도 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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