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라질 카니발 축제에서는 한국인 브라질 이민 50년 축하행사가 있었다. 무희들의 삼바 춤 주제는 ‘한국’이었다고 한다. 내가 브라질 축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아내의 여러 친척들이 브라질에 살고 있고 그 행사 후원자 중 한사람이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1962년 한국인 107명이 브라질로 떠난 것이 한국인 브라질 이민역사의 시작이었다. 아내의 큰 이모 가족들은 그 이듬해 여름에 브라질로 향한 두 번째 농업 이민대열 속해 있었다. 40여 가구를 태우고 부산에서 떠난 배는 여객선이 아닌 화물선이었다. 이민자들은 배의 위층에 못 올라가게 금지 되어있었고 막일을 하는 선원들이 쓰던 배의 아래층 칸에서 지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화물선을 타고 갔던 것 같다.
화물선이었지만 처음 타보는 큰 배 위에서 내려다보는 망망대해의 수평선은 꿈을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배는 홍콩, 싱가폴, 베트남 페낭을 거쳤다. 인도양의 험난한 파도를 지날 때는 배멀미를 많이 했다.
배안에서는 지루했지만 정박하는 곳마다 배에서 내려 육지를 구경할 수 있었고 새로운 곳을 보고 다른 나라 음식을 먹는 재미가 괜찮았다. 철없는 아이들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과 새로운 풍경에 마냥 흥겹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어른들은 걱정이 되었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외국말 연습도 하고,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진을 계속한 배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거쳐 남대서양을 지나 마침내 브라질의 산토스 항에 도착한 것은 부산에서 출발한지 45일만이었다. 큰 이모 가족들은 다시 브라질 대륙을 차로 가로질러 사웅파울로 근교에 도착했다. 그곳 농장의 흙담집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광야와 산기슭에서 경험도 없는 농사를 도저히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내로 나와 바느질, 작은 상점을 시작함으로써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자녀들은 포르투갈어를 몰라 정규 학교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 감리교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서 그들을 받아주어 그곳에서 포르투갈 어를 배운 다음 정규학교에서 적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한인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직업전선에 뛰어든 젊은이들도 많았다.
당시 이민자들의 삶속에서 브라질의 낭만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긴장과 생존 전쟁 그 자체였다고 한다. 큰 이모는 한국에서 비싸게 수입해 팔려던 젓갈을 브라질 관리들이 상한 식품이라고 빼앗아 그대로 바다에 던지는 것을 보고 울었다며, 문화차이를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었다고 회상하셨다.
이민 물결은 90년대까지 계속 있었고 한국의 반공포로들, 독일로 갔던 광부들도 브라질로 합류하였다. 지금 브라질에 사는 한인 동포는 5만-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민 초기의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큰 이모님은 이웃의 한인들에게 음식을 풍성하게 대접하셨고 한국에서 온 외교사절들을 극진히 대접하셨다. 또한 목사님을 도와서 한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헌신하셨다.
그후 이모님은 미국으로 오셔서도 자녀들이 자리 잡는데 도움을 주고, 어려운 한인들을 위로하고 풍성하게 대접하셨다. 나 역시 평안도가 고향인 큰이모의 초대를 받아 가보니 내 주먹 두개보다 큰 왕만두와 녹두전이 큰 쟁반에 수북하게 쌓여 있어서 먹다먹다 질렸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에 천국으로 가셨는데 자녀들과 주위 분들이 그분을 떠올리면 한결같이 아낌없는 대접과 사랑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제 그분의 덕을 보고 자란 자손들은 브라질, 미국에 흩어져 사업가, 엔지니어, 치과의사, 각 분야 직장인들로 그 나라의 훌륭한 시민으로 살고 있다. 한국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민 간 나라의 시민으로, 더 나아가서는 세계인으로서 이들 후손은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 자녀들에게 나는 아버지로서 어떻게 기억될것인가?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였고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아버지는 정직했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기억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