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베푸는 호의를 사양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별생각 없이 사양했다가는 오해를 사고 자칫하면 관계마저 서먹해진다. 그래서 달갑잖은 호의도 때로는 “땡큐”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노우 땡큐”한마디 하면 간단히 해결될 노릇인데, 미국에서 이게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문제이다.
사양하는데도 악착같이 호의(?)를 베풀고야마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은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위해 베푸는 호의인지 자못 헷갈린다. 상대방이 정중하게 사양하면 섭섭한 마음이 좀 들더라도 호의를 거두어들이면 좋으련만···
한 친지로부터 종합 비타민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평소 보약이나 영양제 따위를 먹지 않는 편이어서 정중히 거절을 했다. 거듭 사양하는데도 “건강에는 비타민이 최고”라며 막무가내로 안겨주는 바람에 도리 없이 받아두었다. 달갑잖은 호의도 입고나면 부담스럽고 빚지는 기분이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고맙다는 인사도 당연히 챙겨야 한다.
집에 와서 비타민 병에 붙은 레이블을 보니 100정 들이에 만기일이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레이블에 하루 한 알씩 먹으라고 적혀있으니 석 달 남짓 먹어야 할 판이었다. 만기일이 지나는 순간 비타민이 갑자기 변질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걸 가지고 생색을 내며 베푼 호의(?)가 좀 야속하게 생각되었다.
집에도 비타민이 남아도는 판국에 만기일 전에 다 처분할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웃과 나눠먹을 수도 없고 나의 고민거리를 호의로 포장해서 남에게 슬쩍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 고민거리를 하나 얻은 셈이었다.
머리를 한참 쥐어짜다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람의 몸에 좋다면 나무에게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양 부족으로 쇠약해진 뒷마당의 귤나무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귤나무 주변을 파고 비타민을 묻어주었다. 올해 가지가 찢어지게 튼실한 열매를 맺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호의를 거절 못해 공연한 치다꺼리도 해보았다. 한식 음식점에서 친지들과 점심을 했다. 자리를 뜰 즈음 한 친지가 웨이터에게 먹다 남은 아귀찜을 싸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아귀처럼 아귀찜을 잘 먹는다더니 집에 갖고 가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그는 아귀찜 꾸러미를 내 손에 들려주었다. 먹을 때 보니 내가 아귀찜을 맛있게 먹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먹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사양했다. 그는 단호히 사양하는 나를 “지나친 사양은 교만”이라며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두 손을 들고 잘 먹겠노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나는 다음 약속 때문에 네다섯 시간 아귀찜을 차에 싣고 다녀할 형편이었다.
다음 행선지를 향해 프리웨이에 올랐다. 먹을 때는 몰라도 먹고 나면 코에 거슬리는 게 한국음식 냄새 아닌가. 차 안에서 아귀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먹지 않을 음식이라면 차에 싣고 다니다 집에 가서 버릴 이유가 없었다. 집에 들고 가보았자 먹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프리웨이를 빠져나와 쇼핑몰 쓰레기통에 아귀찜을 밀어 넣었다.
호의 때문에 속을 상한 적도 있다. 한 친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부인은 남편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남편 머리 손질을 마친 그녀는 내 머리를 멋지게 다듬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나는 아이들처럼 싫다고 요리조리 피하다가 결국 의자에 앉혀지고 말았다. 이발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지난 20년간 일편단심 한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겨온 터였다. 앞에 거울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내 머리를 손본 뒤 “한결 핸섬해지셨네”하며 만족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집에 와서 비로소 거울로 내 뒤통수를 살펴보고 나는 속이 상했다. 아내는 한 일주일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왜 사람들은 호의를 거부당하면 마치 자신이 거부당한 듯 언짢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일까? 정이 많은 한민족이 그저 정 때문에 호의를 베풀려니 생각하면서도 그 심리상태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도 나는 호의를 베풀겠다는 사람들을 당해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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