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국정연설은 대부분 예상된 내용이었지만 한 가지가 눈길을 끌었다. 여성의 역할과 성차별을 특별히 부각시킨 것이다. 대통령은 성별 임금격차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오늘날 여성은 노동력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성이 1달러 받을 때 여성은 77센트를 받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2014년에 그런 일이라니, 당황스럽습니다.”
차별 속에서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가족을 돌보느라 겪는 어려움을 없애도록 의회와 백악관, 기업이 힘을 합치자고 촉구한 오바마는 “여성이 성공해야 미국이 성공한다(When women succeed, America succeeds)”는 말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성이 성공해야 미국이 성공’은 연방의회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경제 아젠다 이름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성의원들이 지난여름 시작한 프로젝트로 여성들이 일터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고, 가정일과 직장일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정치적 제도적 개선을 하겠다는 취지이다. 오바마가 사용함으로써 이 말은 호소력 강한 캐츠프레이즈 효과를 갖게 되었다.
오바마가 여성의 권익문제를 굳이 국정연설에 포함시킨 것은 단순히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 중간선거의 해에, 인기 떨어진 대통령이 민주당 표밭인 여성유권자들을 단단히 붙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가족 구성원을 떠올려 보면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저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지 싶다. 개성 있고 당당한 부인과 영특한 딸들 … 여성들에 둘러싸여 사는 그의 삶이 자연스럽게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역지사지가 힘든 벽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성별이다. 남성이 아무리 애를 써도 해산의 고통을 알 수는 없다. 남성중심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실망과 좌절, 분노 역시 남성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거리가 있다. 채용, 승진, 봉급 등에서 여성들이 받는 직장 내 성차별, 부부가 똑같이 일해도 가사는 아내 몫인 가정 내 불평등에 대해서 남성들은 대부분 눈 감거나 귀 막고, 입을 다문다. ‘지금대로’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남성들에게 성차별 이슈가 갑자기 ‘내 문제’로 바짝 다가들게 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딸들이다.
중년여성들 중 딸이 결혼한 후 남편이 변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젊어서는 신경도 안쓰던 설거지며 청소를 나서서 한다는 것이다. 시작은 딸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딸이 퇴근 후 저녁 준비하랴 아이 돌보랴 절절 매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가슴이 저리고, 옆에서 손 놓고 있는 사위가 밉살맞다. “똑같이 일하고 와서 왜 내 딸만 저 고생하나?” 하다 보면 부부의 가사분담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아내가 고생할 때는 안 보이던 불평등이 딸이 고생하니 보이는 것이다.
한국에서 신문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대부분 남성인 선배기자들의 사고방식은 가부장적이었다. 인권문제에는 민감했지만 여권에는 무관심했다. 그런 그들이 90년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지적하는 글을 쓴 것을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는 나이였다. 글은 딸의 실망과 좌절을 지켜본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미국의 연방의회 의원들 그리고 영국의 남성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딸 가진 남성들의 경우 낙태 등 여성이슈에 대해 훨씬 진보적이다. 딸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서 이제까지 못 보던 것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
딸은 아버지의 가슴을 열어주는 힘도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0년 동안 덴마크의 1만여 회사들을 상대로 직원봉급 추이를 살펴본 연구가 있다. 미국과 덴마크 연구진이 지난 해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최고경영자가 새로 아버지가 되면 직원들 봉급이 깎인다. 평균 0.2%, 연간 100달러 정도이다. 가족이 늘면서 CEO는 무의식적으로 “내 가족부터 챙겨야지” 했으리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아기의 성별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아기가 아들이면 직원 봉급이 깎인 반면 딸인 경우 오히려 봉급이 올라갔다. 딸을 품에 안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부드러운 남자’가 되어서 남에 대한 배려가 커지는 결과로 해석이 된다.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성공’은 여성만의 노력으로 부족하다. 딸을 통해 눈을 뜨고 가슴이 열린 아버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 아버지 중 한사람이 선언했다.
“여성이 성공해야 미국이 성공한다.” 성차별을 없애서 모두가 성공하는 사회로 만들자는 의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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