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천사는 더 자라고 소리치고, 착한 천사는 빨리 일어나서 운동 가라고 한다.”
오래 전 은석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의 일기이다. 새벽에 일어나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잠 많은 어린 나이에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눈 딱 감고 자고 싶은 마음, ‘아니야, 일어나야 해’ 하는 마음이 매일 아침 서로 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했을 것이다.
정반대쪽에서 유혹하고 잡아끄는 두 마음을 어린이는 나쁜 천사와 좋은 천사로 표현했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마음과 마음의 싸움이 어느 순간 지겨워졌나 보다. 어린이는 썼다.
“매일 (두 천사가) 싸우니 지긋지긋하다. 싸우지 않게 벌떡 일어나야겠다.”
당장의 작은 달콤함 대신 훗날의 큰 열매, 꿈 혹은 목표를 선택하는 의지력이 작동되는 순간이었다. 2000년 나쁜 천사와 좋은 천사 사이에서 갈등하던 어린이는 10년 후인 2010년 한국 역사상, 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500m)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빛을 발하고, 지난해 4번이나 세계 신기록을 세운 ‘빙속 여제’ 이상화(25)의 어렸을 적 이야기이다.
소치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눈과 얼음 위에서 하는 운동으로는 세계 최고의 고수들인 88개국 2,800여 선수들이 인간의 몸으로 가능한 극한의 기량들을 펼쳐 보이는 제전이다. 대회 열이레 동안 우리는 선수들의 불꽃 튀는 메달경쟁을 지켜보며 숨죽이고 손에 땀을 쥐고 기쁨에 환성을 지를 것이다.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는 이들은 누구인가. 어려서 선수의 꿈을 품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의 꿈을 실현한 이들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개막에 앞서 유로 스포츠는 이번 올림픽에서 주목할 스타 50명을 선정했다. 피겨스케이팅 2연패에 도전하는 김연아(24), 라이벌들이 감히 금메달을 넘볼 수 없을 만큼 월등한 이상화,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하는 모태범(25) 등이 포함되었다. 정상 중에서도 정상을 차지한 극소수 선택받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모태범은 4년 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후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하다.” 이상화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근 20년 친구인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고 격려하며 끈질기게 망치질을 해왔다.
‘끈질김’이란 끝없는 도전, 끝없는 연습,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는 악바리 근성 … 우아한 김연아의 상처투성이 발이 상징하는 것.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로 유명해진 ‘1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 잘 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탁월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타고난 재능은 기본, 땀이 필수라는 것이다.
글래드웰은 책에서 1990년대 초 베를린 음악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소개했다.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 등 연구진은 바이올린 전공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연습시간을 비교했다. 세계적 솔로주자가 될 엘리트 그룹, 보통의 프로수준 그룹, 연주자보다는 그냥 음악교사가 되려는 그룹이었다.
대략 5살 전후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들은 처음 몇 년 간은 일주일에 두세 시간 비슷하게 연습을 했다. 하지만 8살쯤부터 차이가 나더니 나이가 들수록 연습시간이 달라졌다. 그 결과 스무 살이 되자 엘리트 그룹의 총 연습시간은 1만 시간, 그냥 잘하는 그룹은 8,000시간, 음악교사에 만족하는 그룹은 4,000시간으로 현격한 차이가 났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씩 연습해서 10년이 걸리는 시간. 몸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만큼 각인되는 시간이다. 모차르트, 비틀스, 빌 게이츠 등 각 분야의 천재들 중 이만한 노력을 하지 않은 케이스는 없었다고 해서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생겨났다.
10년을 하루같이 연습하려면 조건이 있다. 우선은 재능이다. 재능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재미가 있어야 장기간의 집중이 가능하다. 다음은 의지와 자제력이다. 꾀가 나고 힘들어도 묵묵히 견디는 인내심, 기어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강한 의지, ‘나쁜 천사’의 온갖 유혹들을 물리치는 자제력 없이 ‘10년 공부’는 불가능하다.
재능에서 성취까지 …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 끈질김이라는 망치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것은 기본, 그 다음은 경기 순간이 메달을 결정한다. 그 순간 몸의 컨디션, 빙질 등 예상치 못한 작은 틈새로 갖가지 역전 드라마들이 펼쳐진다. 그러니 진인사대천명이다. 스포츠를 보며 인생을 본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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