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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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인 친구가 지난 해 교통위반으로 벌금을 물어야 했다. 600달러나 되는 벌금을 낼 형편이 안 된다고 하자 법원에서 사회봉사명령이 떨어졌다. 시간당 10달러로 계산해서 벌금에 해당되는 시간만큼 근로봉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가 한 일은 밸리의 한 고등학교에 가서 청소를 돕는 일이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일주일에 두세 번 가서 일하며 60시간을 채우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청소하느라 계속 서서 움직이다 보니 살이 쭉 빠졌다”며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시 정부 재정이 나빠지면서 벌금들이 너무 올라 티켓 한번 받으면 서민들은 그달 살림이 휘청한다. 친구의 케이스를 보면서 돈은 없고 시간은 있는 사람들은 사회봉사가 한 방법이 되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환형유치-벌금형을 받은 사람이 벌금을 내지 못할 경우 교도소에 들어가서 노역으로 형을 대신 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그 하루 일당이 무려 5억원이라고 해서 지난 한주 한국이 시끌시끌했다. 수백억 대 세금포탈과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던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 케이스이다.
5억원이면 대략 50만달러. 연소득 5만달러 정도의 서민들은 1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게 통 큰 일당을 정한 사람은 법관이었다. 벌금 대신 노역형에 처할 때 일당을 정하는 것은 법관의 재량이다. 법은 상식에 기초하고 법관은 상식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재량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노역 일당은 5만원~10만원으로 계산이 되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그 5,000배~1만배로 넉넉하게 일당을 잡아준 데는 ‘상식’을 무시할 만한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인맥이 작용했을 것이고 인맥이 작동되는 데는 필히 돈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것이 또 다른 상식이다. 안 봐도 뻔한, 그래서 상식인, 돈의 위력이다.
20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경제 대공황을 맞아 암울했던 1930년 그는 상당히 희망적인 예언을 했다. 100년 후인 2030년이 되면 영국은 8배나 더 잘 살게 되고, 원하는 사람은 1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될 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했다. 그때쯤이면 물질적인 욕구가 완벽하게 충족되어서 돈을 좋아하는 것이 사회적 지탄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예언했다.
2030년을 16년 남겨둔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물질적인 욕구가 그만큼 충족 되었는가하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이다. 욕구란 가진 것에 눈감고 못 가진 것만 바라보는 것. 충족을 모른다.
케인스는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사람의 심리를 계산에 넣지 못했다. 특히 빗나간 것은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였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기는커녕 세상의 모든 돌이 황금이기를 바랄 정도로 지금 물질만능주의는 깊어졌다. 돈은 더 이상 우리가 좋아하고 말고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가치를 좌우할 정도로 힘이 막강해졌다.
‘일당 5억원’ 논란이 터지기 한달 전 서울에서는 세 모녀가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빚과 지병, 신용불량으로 더 이상 생계를 이어갈 길이 없다고 판단한 61세의 엄마와 30대의 두 딸이 지하 단칸방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은 ‘죄송하다’고 했다. 서랍장 위에 5만원짜리 14장이 담긴 흰 봉투가 놓여있었고 봉투 겉봉에 유서 아닌 유서가 쓰여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 …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쓰레기 치우면서 하루에 5억원씩 벌금을 탕감 받던 허씨는 결국 교도소에서 ‘쫓겨’ 났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검찰이 노역을 중단하고 벌금 집행을 결정했다. 세금과 벌금 다 낼만큼 그는 재산이 충분하다고 한다.
신분이 없어진 세상에 돈이 들어와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다. 수백억 벌금을 물어야할 사람은 ‘일당 5억’으로 황제대접을 받고, 월세 50만원짜리 살림도 버거웠던 세 모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죄송해하는 세상은 문제가 있다. 말 그대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했었다.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들에게 상처만 주지 않도록 정치를 했으면 한다.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깊을 대로 깊어졌다. 박탈감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적 파이는 커졌지만 극소수가 파이의 대부분을 독차지하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소득 불균형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케인스가 예견하지 못한 신자유주의 경제, 21세기 우리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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