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날들이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생명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배는 완전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선체와 더불어 실종자들의 생존가능성도 가라앉았다. 탑승자 476명 중 구조된 사람은 174명. 3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구조자 숫자에 단 몇명, 단 한명이라도 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생사가 갈리는 긴박한 상황에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정확하게 말하면 눈에 띄는 두 부류가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 먼저 살고 보겠다는 부류 그리고 나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살리려는 부류. 그 중간에는 전자의 그악스러움에 떠밀려 죽음으로 내몰리거나 후자의 숭고한 희생정신 덕분에 목숨을 건지는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있다.
안타깝고 비통한 이번 여객선 침몰사고 중에도 아름다운 희생들은 있었다. 캄캄한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불태워 빛이 되어 준 사람들이다. 선장, 항해사 모두 달아난 선상에서 “승무원은 가장 나중”이라며 끝까지 승객들 대피를 돕던 22살의 여 승무원 박지영씨, 입고 있던 구명조끼까지 벗어주며 친구들의 탈출을 도왔던 단원고 2학년 학생 정차웅군. 불안해 우왕좌왕하는 제자들을 “걱정마라, 침착해라, 그래야 산다”고 달래며 일일이 구명조끼 입혀 갑판으로 올려 보낸 단원고 교사 남윤철(35)씨.
마음만 먹으면 제일 먼저 탈출할 수 있었던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버티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 외 구명조끼 나눠주며 “빨리 밖으로 피하라”고 소리쳐 친구들 20여명을 살려낸 단원고 2학년 조대섭군, 기울어진 배에서 커튼으로 로프를 만들어 학생들 20여명을 대피시킨 탑승객 김홍경(59)씨 등이 있어서 170여명이나마 구조 될 수 있었다.
선장 등 승무원들이 승객 대피에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어도 구조자는 훨씬 늘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그러면서 떠올리는 것이 영화 ‘타이태닉’의 대피장면이다. 승무원들이 여성과 어린이들을 구명정에 태워 하선시키는 동안 보일러실과 기관실에서 죽는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던 기관사들, 침몰하는 순간까지 갑판 위에서 찬송가를 연주하던 7명의 악사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 광경은 실제 상황이었다. 일명 ‘버큰헤드 훈련’의 전통이다.
1912년 4월15일 밤의 타이태닉 호 침몰 사건 이전 가장 큰 해상사고는 1852년의 버큰헤드 호 침몰 사건이었다. 영국군함 버큰헤드 호가 사병들과 그 가족 등 638명을 태우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던 중 2월26일 새벽 암초에 부딪쳤다. 케이프타운을 불과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해상에서 배가 침몰하는 데 구명정은 3척뿐이었다. 이때 함장이 내린 명령이 ‘여자와 어린이 먼저’ 였다.
부녀자들을 구명정에 태우는 동안 수백명의 병사들은 갑판에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서있었다. 얼마 후 배가 두 동강 나자 함장은 병사들에게 절대로 구명정으로 헤엄쳐 가지 말 것을 명령했다. 구명정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열병식을 하듯 의연하게 서서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어 나무판자를 잡고 버티거나 돛대에 기어올랐던 병사 몇몇이 살아남아 구조를 받았고 대다수는 사망했다. 상어가 득실거리는 해역이어서 많은 병사들이 상어에 물려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193명 뿐.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살고 남자들은 25%만이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고 선장과 병사들의 영웅적 자제력과 용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버큰헤드 훈련’이라는 불문율이 생겼다. 항해 중 재난이 닥치면 남자들은 꼼짝 않고 갑판에 남고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대피시키는 전통이다. 위대한 자기희생의 전통이다.
전통이 물론 항상 지켜지지는 않았다.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이 1852년부터 2011년까지 대형해상 사고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버큰헤드 전통이 지켜진 것은 28% 뿐이었다. 저마다 자기 목숨 지키려는 본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태닉을 비롯, 전통이 지켜졌던 사고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죽음을 모면했다.
세월호 참사는 책임자들이 제때 대응했다면 피해가 훨씬 줄었을 사건이다. 재난대응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살린 것은 개개인의 희생이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듯 이들은 자신을 내어놓음으로써 승객, 친구, 제자들을 살렸다. 부활의 계절에 희생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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