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에게 당연한 날들이 내게는 최상의 날들” 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3주 전 LA 타임스 오피니언 란에 실렸다. 4월15일 보스턴 마라톤 테러 1주년 되는 날이었다.
제프 바우만(28)이라는 청년이 쓴 이 글은 약혼녀와 함께 방에 페인트칠을 하고 친구와 가구를 조립하고, 그들을 위해 카페 라테를 만든 후 방바닥에 앉아 같이 마시며 느낀 행복감을 담고 있다. 동거하는 약혼녀가 오는 7월 출산예정이어서 아기 방을 꾸민 것이었다.
“한 순간, 이게 내 삶이란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 내 집, 내 사랑, 내 친구, 곧 태어날 내 아기” 라고 그는 썼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요소들에 그가 이렇게 감격하는 것은 그런 보통의 삶이 그에게는 불가능해 보였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 예를 들어 혼자서 화장실에 가고, 굴러 떨어지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고, 친구들을 위해 라테를 만드는 일들이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산과 같은 과제들이었다. 1년 전 보스턴 폭탄테러 현장에서 그는 두 다리를 잃었다.
그날 바우만은 마라톤에 출전한 여자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결승지점 부근에 서 있었다. 테러용의자 차르나예프가 폭탄 담은 백팩을 메고 서있던 바로 그 옆이었다. 박수와 환호성으로 시끌벅적하던 주변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던 그 남자와 그는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잠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보니 남자는 사라지고 발밑에 백팩이 놓여있었다. 굉음과 폭발.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서 깨어보니 허벅지 아래로 두 다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어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견뎠을 지 상상하기 어렵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 그리고 지옥형벌 같은 무자비한 통증과 싸우고 또 싸웠을 것이다.
이제 그는 의족으로 걷고, 약혼녀 옆에서 집안일을 거들며, 남들은 당연하게 여기는 평범한 날들에 감격하며 살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준 덕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특히 여자친구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그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통증을 못 견뎌 엉엉 울 때면 옆에서 같이 울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있어주는 것, 그게 사랑 아닌가” 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들은 지난 2월 약혼했다.
확률로 보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그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일어난다. 보스턴 대로에서 바우만이 테러로 불구가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이 어린 아들딸을 먼저 보내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어느 모퉁이에 불행이 숨어있는 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불행까지도 끌어안아야 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때로 삶은 그 자체로 형벌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최상의 것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던 엘리트 그룹이 있었다. 1939년 하버드에서 시작된 ‘그랜트 연구’의 대상자들이다. 당시 하버드 의대의 알리 보크 박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 위해 하버드에서도 일등급 수재 268명을 선별했다. 그중 한명이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모두 백인 남성인 이들을 대상으로 정기적 설문조사, 주치의의 건강검진, 인터뷰 등을 통해 연구를 진행해온지 올해로 75년이다. 청년들은 이제 세상을 떠났거나 90 넘은 노인이 되었다. ‘평생’이라는 긴 시간만으로도 그랜트 연구는 의미가 크다.
‘부유한 환경에 하버드 학벌’로 출발한 이들의 일생은 행복했을까? 대학 문을 나설 때만 해도 모두가 탄탄대로를 달리며 성공적인 삶을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일등급 엘리트들에게도 삶은 단순하지 않았다. 삶의 모퉁이 모퉁이에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직업을 잡지 못해 온갖 잡다한 일을 하며 인생을 허비한 케이스, 30대부터 부모와 세상을 증오하더니 마약에 빠져 40대 후반에 돌연사한 케이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 게이 선언을 하고는 술에 절어 살다 아파트 계단에서 떨어져 죽은 케이스도 있었다.
알콜 중독이 허다했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 경험이 있는 사람은 50세 때 조사에서 1/3이나 되었다. 반면 교통사고나 배우자의 암 발병 등 불행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잘 견뎌내며 “행복한 삶이었다”고 만족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66년부터 연구를 맡으며 근 50년간 이들의 삶을 추적해온 조지 베일런트 박사는 행복의 비결을 ‘따뜻함’으로 정리했다. 따뜻한 마음, 따뜻한 관계 즉 사랑이다. 불행에 부딪쳤을 때 가족과의 관계가 따뜻한 사람은 그 따뜻함으로 이겨내지만 관계가 냉랭한 사람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다. 높은 IQ도 재력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있어주는’ 따뜻한 마음이 다리 잃은 청년을 살렸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따뜻함이다. 가정의 달에 가족과의 관계의 온도를 생각해본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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