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메릴랜드대학에서 신문학을 가르치던 1980년대 초에 신문 1면에는 SALT(전략무기감축조약)과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이란 약어들이 자주 등장했었다. 매주 한 번씩 시행하던 뉴스 퀴즈에 그것들을 포함시켰더니 10명이면 7명이 틀린 답을 적어내어 놀란 적이 있었다. SALT는 소련과 미국조약이라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틀린 풀이를 한 것도 있었으며 AIDS는 당시 무슨 약품이름이던 AYDS와 혼동한 것이 압권이었다.
언론계 지망 대학생들의 시사 실력이 그 정도였으니까 다른 분야 학생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서 ‘우리는 무식한 투표권자들을 제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제목의 오피니언 칼럼을 읽고 그 생각이 났다. ‘연방주의자’라는 보수계 평론지의 선임 편집인이라는 데이빗 하사니의 그 글에는 “만약 당신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면 당신은 나머지 우리들을 당신의 무식에 종속시키는 짓을 피해야 할 시민으로서의 의무가 있다”는 부제가 붙어있다.
진보주의자들의 주장대로 투표가 민주주의의 신성한 의식이라면 사회는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최소한의 수준을 기대할 수 있어야 되며 시민권이 공화당원들이 주장하는 대로 거룩한 것이라면 투표권자는 시민후보자만큼의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시민권 시험문제들을 열거한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면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 “(미국독립당시) 13개주가 있었다. 그 중 셋을 거명해보라” “종교의 자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뉴스위크 잡지가 몇 년 전에 1,000명의 투표권자들에게 시민권 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가 인용되었다. 거의 30%가 당시 부통령의 이름을 몰랐다. 60%가 상원의원의 임기를 몰랐다. 또한 연방헌법의 수정 제1조로부터 10조를 권리장전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43%가 알지 못했다.
다른 연구기관의 조사결과도 비슷했다. 설문응답자들 중 36%만이 미국정부의 3부를 거명할 수 있었으며 연방대법원이 법률의 합헌성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62%뿐이었다. 무식한 사람들이 법제도의 기본 틀을 정하고 시민들의 생명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정자들을 뽑는다는 게 문제라는 논지이다.
그러면서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글을 인용한다. “민중의 지식이 없거나 지식을 획득할 방법이 없는 상황아래서의 민중의 정부는 소극(素劇)이나 비극의 서막이거나 두 가지 다의 서막에 불과하다.” 칼럼의 필자 하사니는 과거와는 달리 현재에는 무진장의 정보를 순식간에 점할 수 있는 시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공화국의 기본 지식이나 후보자들의 정견에 대해 배우는 데는 문자 그대로 몇 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정보의 힘을 포기한다면 당신은 나머지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투표를 하지 말라”고 하사니는 역설한다.
만약 금년 1월부터 여러 주의 예선전에서 표를 던진 다수의 공화당 유권자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기타 16명 후보들의 정견을 꼼꼼히 비교하고 이민역사를 포함한 미국의 발전사와 3권 분립 등의 헌법제도를 염두에 두고 그리했다면 트럼프가 대선주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여성비하, 타 인종 모욕, 타종교 비방, 경쟁후보들에 대한 욕설에 가까운 비방,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 오만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선 투표자들의 다수를 획득하는 이변을 일으킨 데는 유권자들의 이성적이 아닌, 감성적인 결정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세계 무역전쟁의 가능성’ ‘중국을 세계 최대강국으로 만들 가능성’ ‘인종분규와 충돌의 개연성’ 등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될 여러 가지가 머리에 떠오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우중(愚衆)이다.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투표한 적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크게 신경이 써지는 세월이다.
<
남선우/ 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