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영국과의 전쟁
이제 식민지 주민들은 본격적으로 모국인 영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법적으로 모국과 통합되어 있었고 독립선언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독립을 선언하는 편이 확실히 유리했다. 독립을 선언해야 아메리카는 중립국으로부터 교전국으로 인정 받고 그들의 포로는 군인 대우를 요구할 수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도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합법적으로 왕당파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많은 식민지인이 여전히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들은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못했는데 가령 프랭클린의 아들 윌리엄 프랭클린 총독 같은 사람이 그러했다. 몇몇 사람은 사업상 대영제국의 신민이어야 했기 때문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아메리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영국의 지도적 인물, 즉 버크, 채텀 경, 찰스 폭스 등이 협상에 성공하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서로 적대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인 중에는 아메리카에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조지 3세의 실책
미국인들이 일대 결단을 내리는 데 일조한 인물은 조지 3세였다. 이는 그가 부덕하거나 우매해서가 아니라 국왕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지나칠 정도로 사명감이 강해서 빚어진 결과였다.
그에게 아메리카 사건은 체면 문제로 보였고 사실 그는 아메리카보다 더 큰 모험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영국에 전제 군주정치를 확립하는 문제였는데 만일 식민지 통치에 실패하면 국내에서 자유당과 입헌군주제가 득세할 것이 확실했다. 1775년 10월 국왕은 영국이 절대로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무력으로 엄중히 단속하겠다며 나섰다. 하지만 국왕에게 사죄한다면 길을 잘못 든 어린이를 대하듯 관대하게 조처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불행히도 국왕은 조지 워싱턴의 동지들이 방종한 자식이 용서를 빌듯 국왕에게 특사를 간청할 가망이 없다는 현실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첫 번째 실책이었다.
-용병 파견에 미국인들 격분
두 번째 실책은 의회가 실력이 없을 때 실력을 기반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을 채택한 일이다. 1775년 영국 육군의 최대 병력은 5만5,000명이었는데 그중 1만 2,000명은 아일랜드에서 떠날 수 없었고 나머지는 인도, 서인도, 캐나다 등에 분산되어 있었다. 여기에다 영국은 징병제도에 반대했다. 결국 조지 3세가 아메리카에 병력을 더 파견하려면 독일의 소제후들에게 용병을 사야만 했다.
국왕의 선택은 미국인을 격분케 했다. 외국인 용병 파견으로 자극을 받은 그들은 보스턴을 탈환한 후 사기가 충천했다. 그때까지 머뭇거리던 일반시민의 의견은 영국과의 단절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한 책자가 출판되면서 일반시민의 저항정신이 한층 더 견고해졌다. 그것은 당시 무명이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저서 《상식 Common Sense》이었다. 아메리카의 궐기를 이끌어낸 이 영국인은 일상생활에서 실패만 거듭해온 사람이었다.
하급관리직을 두 번 얻기도 했지만 둘 다 해직당했고 아내는 그를 떠나버렸다. 그가 절망에 허덕일 때 프랭클린을 만났는데 프랭클린은 그의 비범한 눈빛에 이끌려 소개장을 써주었다.
-쉽게 써 히트 친 ‘상식’
1774년 그는 내면에 깊은 불만과 문필 실력을 품고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대륙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뉴스를 모으고 여론을 조사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론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을 안 그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책이 성공한 이유는 문체가 직접적이고 간결했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은 그때까지 활발하게 전개된 법적 시론(時論)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상식》의 저자는 법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상점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시민을 기반으로 하는 아메리카가 지금껏 영국에 예속되어 왔는데 무슨 이득이 있었는가? 페인은 이렇게 역설했다.
“우리의 번영을 시기하는 정부에 우리를 통치할 권리가 있는가?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누구나 독립을 찬성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독립이란 단순히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법률을 만드느냐, 아니면 이것을 아메리카 최대의 적인 국왕에게 맡기느냐’를 분명히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식민지가 오늘날까지 영국의 통치 밑에서 번영하지 않았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반박하겠다. 그건 지금까지 이 아이는 우유를 먹고도 잘 자랐으니 고기를 줄 필요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 유럽적인 분쟁에서 깨끗이 손을 떼는 것이 아메리카에 유리하다. (…) 배가 한 척 들어올 때마다 300만 민중이 부두로 달려가 이제 자유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알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 자유는 지구의 도처에서 억압을 못 이겨 피난처를 찾고 있다. 아아, 미국인이여! 이 피난자를 받아들이고 인도주의의 안식처를 마련하자.”
-3개월만에 12만부 팔려
그는 새뮤얼 애덤스보다 더 급진적이었고 모든 정부 형태를 비난했다.
“사회는 어떤 형태든 하나님의 뜻에 맞지만 정부는 최선의 정부라도 악마와 같다. (…) 한 정직한 사람이 왕관을 쓴 악한들보다 이 사회에 더 가치가 있다. (…) 하나님이 영국과 아메리카 사이에 먼 거리를 두신 것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통치할 수 없다는 뜻을 뚜렷이 나타낸 것이다. (…) 한 대륙이 한 섬의 통치를 영원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책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런던에서는 신사들이 신발의 뒤축에 ‘TP’라는 그의 이름 약자를 새긴 징을 박아 신고 다니면서 그것을 밟는 것이 유행할 만큼 토머스 페인은 그들의 미움을 샀다. 반면 아메리카에서 《상식》은 농촌에 사는 급진파의 성서나 마찬가지였고 3개월도 되지 않아 12만 부나 팔려 나갔다. 급진파의 의기는 드높아졌고 완고한 보수당원도 전향했으며 워싱턴까지도 이 책자를 높이 평가했다.
<
신용석 번역>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