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나폴레옹의 계산
제퍼슨 치하에서 가장 큰 업적은 루이지애나의 편입이다. 오늘날 루이지애나 주보다 훨씬 넓은 이 영토는 미시시피 강 유역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1763년 프랑스가 스페인에 넘겨준 땅이다.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미시시피 강의 수로 이용권과 뉴올리언스에 상품을 출하할 권리를 허용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 권리는 오하이오 강 유역에 사는 미국인에게 불가결한 것이었고 북부의 농민에게도 하천이 유일한 통상로였다.
1802년 비밀조약으로 스페인이 토스카나와의 교환조건으로 루이지애나를 프랑스에 반환했다는 사실을 안 서부의 농민들은 몹시 불안해했다. 영예의 절정에 있던 나폴레옹이 힘없는 스페인보다 위험한 이웃이라고 생각한 미국인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메리카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탈레랑은 제 1집정관 나폴레옹에게 프랑스의 식민지 제국 재건을 권유했다. 미시시피 강 유역을 통해 루이지애나와 캐나다의 유대를 확보한 뒤, 가능하면 캐나다를 탈환해 1763년의 파리조약을 폐기하려는 심산이었다.
-제퍼슨의 결심
프랑스는 이 계획을 준비하기 위한 기지를 건설하고자 샤를 르클레르를 산토도밍고에 파견했다. 그곳에서는 흑인 투생 루베르튀르가 프랑스를 무시하고 독재정치를 하고 있었다. 르클레르 장군은 이 흑인 나폴레옹을 타도했으나 그 자신도 황열병으로 사망하고 군대도 많은 손해를 보았다. 제퍼슨은 프랑스에 우호적이었으나 만약 프랑스가 미시시피 강어귀를 점령한다면 미합중국은 어쩔 수 없이 영국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루이지애나와 서부 플로리다를 사들일 결심을 하고 제임스 먼로와 주 프랑스 대사 로버트 리빙스턴에게 프랑스와 협상하라고 지시했다. 프랑스가 거절하면 뉴올리언스만이라도, 그것이 어려우면 미시시피 강 좌안 지방을, 그마저도 안 되면 미시시피 강의 수로 이용권과 강변에 창고를 설치할 수 있는 영구적 권리를 얻도록 했다. 만약 모든 일이 실패하면 먼로와 리빙스턴은 곧장 영국으로 출발해 협상하라고 이야기해뒀다.
-1803년 미국과 프랑스의 매입 협정
“뉴올리언스를 사겠다고? 왜 뉴올리언스만을? 루이지애나 전부가 필요치 않은가?”
탈레랑이 이렇게 말했을 때 아메리카의 두 사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프랑스는 기후 문제로 산토도밍고 원정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식민지 재건 계획을 포기한 참이었다. 영국과 전쟁을 시작하려던 중대한 시점이라 제 1집정관 나폴레옹은 자금이 필요했고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해상권을 장악한 영국이 모든 점에서 유리했으므로 군대를 파견하느라 본국이 약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비록 잠시 동안이긴 했어도 기막힌 순간에 세일 기간이 생겼고 결국 아메리카는 제국이라고 부를 만한 이 광대한 지역을 6,000만 프랑에 사들였다. 제퍼슨의 입장에서 이것은 참으로 기묘한 모험이었다. 긴축주의자에다 법률에 민감한 그가 대통령의 권한만으로 해밀턴이 간신히 의회의 동의를 얻어 여러 주의 채무를 인수한 금액의 무려 4분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을 덥석 지출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헌법에 엄격한 그가 헌법에 열거된 대통령의 권한에 없는 일, 즉 외국 영토를 취득하고 그곳 주민에게 아메리카의 시민권을 주는 일을 독단적으로 감행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비합법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메리카의 미래가 이 협상에 달려 있음을 자신 있게 내다보았다.
-서부 탐험대
루이지애나를 얻음으로써 아메리카의 영토는 두 배 이상 커졌고 미시시피 강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물론 서부의 경제적 발전까지 확보했다. 그뿐 아니라 군사적인 안전보장까지 강화할 수 있었다. 더구나 루이지애나의 서부 경계가 모호한 상태라 거의 전 대륙이 아메리카의 소유나 다름없었다.
제퍼슨은 비준에 앞서 대통령이 합법적으로 처결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려 했으나 먼로와 리빙스턴이 급히 끝내도록 재촉했다. 탈레랑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명했고 상원은 이를 사후에 비준했다.
미합중국을 대륙적인 강국으로 키운 것은 토머스 제퍼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뒤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탐험대를 태평양 연안으로 파견했다. 서해안은 이미 스페인, 영국, 러시아의 항해자가 여러 차례 왕래했다. 1792년 로버트 그레이 선장이 발견한 컬럼비아 강이 고산지대에서 바다로 흐르고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다. 오리건이란 이름은 컬럼비아 강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
제퍼슨은 1783년부터 국왕의 특허장을 통해 초기 식민지 주민이 부여받은 ‘해안부터 해안까지’라는 권리에 따라 서부지역, 즉 미시시피 강변부터 태평양까지 탐험대를 파견할 꿈을 꾸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필요한 자금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830년 문화사업비 명목으로 2,500달러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 괴상한 명목은 똑같이 그 지역의 탐험을 준비하던 영국의 눈을 속이기 위한 조치였다. 이 탐험은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 라는 두 젊은이가 맡았다. 두 사람은 미주리 강을 거슬러 올라가 로키산맥을 횡단했고 컬럼비아 강을 따라 내려간 뒤 강어귀에서 태평양의 파도 소리를 들었다. 이 탐험은 훗날 이 지방에 대한 아메리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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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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