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미국 인구 400만에서 1,200만으로
1790년부터 1830년에 이르는 동안 그 40년 동안 미합중국의 인구는 400만 명에서 1,200만 명으로 세 배 늘었고 영토도 갑절로 확장되었다. 캘훈은 1817년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국토는 광대하며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정부에 정말로 불안감을 안겨준 커다란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서부에 이민의 물결이 끊임없이 범람하면서 계속 새로운 주가 생겼고 국내 정치세력의 균형은 10년마다 변했다. 뉴잉글랜드의 비관론자들은 서부로 향하는 대량 이동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이제 자기들의 주는 황폐하고 쇠락해 거리에 잡초만 우거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아메리카의 미개지를 매년 신세계 해안지대에 도착하는 유럽인이 개척했고, 미국인은 조상이 물려준 땅에서 번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미합중국에 상륙한 유럽인은 친지도 자금도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 우선 노동을 해야 하므로 대서양 해안지방에 펼쳐진 공업지대를 넘어 서부로 가는 일이 대단히 드물다. 자금이나 신용 없이 미개지를 개척할 수는 없다. 산림 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먼저 새로운 혹독한 기후에 맞도록 육체를 단련해야 한다. 따라서 출생한 산천을 버리고 광대한 자기 토지를 얻기 위해 먼 곳으로 매일같이 떠나는 사람은 미국인이다.”
-포장마차와 배로 몰려가다
중서부를 미국인이 개척했다는 사실은 미합중국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것은 이 나라의 단결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 지닌 장점과 단점이 오하이오와 일리노이에 이식되고 서부 정신과 모험주의가 오래된 아메리카 정신에 접목된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 위기로 동부의 경기가 침체되자 모험정신이 강한 수천 가족이 오하이오 강 유역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식량을 마련해 말 또는 포장마차로 피츠버그까지 갔고 물자가 모자라면 도중에 농가에서 사들였다. 자금이 좀 있고 배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은 피츠버그에서 톤당 5실링으로 뗏목 배를 사서 가족과 살림살이를 싣고 물이 불어나는 때 물줄기를 타고 편안하게 목적지에 당도했다.
처음 몇 주일의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이민자들이 구입한 토지는 거의 언제나 삼림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은 배에서 잤고 남자들은 나무를 잘랐다. 이웃의 힘찬 팔과 도끼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새로 이사 온 사람을 위해 동원되었다. 새로 온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한 집에서 한 사람씩 자원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처럼 이웃 간의 친절과 호의는 서부사회의 뛰어난 특색이었다.
토지 개간이 끝나면 주부들은 우선 채소밭을 가꾸기 시작했고 5주일 후 푸성귀로 반찬을 만들었다. 집은 껍질만 벗겨낸 통나무집으로 햇빛, 공기, 연기가 모두 잘 통했고 조립도 매우 빨랐다. 장롱은 없고 대신 들소가죽 끈에 전 가족의 옷을 걸어두었다. 침대, 의자, 탁자 등은 숲 속에서 만들어왔다.
뗏목 배는 풀어서 판자로 쓰고 살림도구는 어느 것이든 말할 수 없이 귀했다. 처음엔 상점이 멀리 떨어져 있어 큰맘 먹고 떠나야 했다. 여자들은 옷을 만들기 위해 양털을 손으로 뽑고 짰는데 재주 있는 사람은 무늬를 넣어 짜기도 했다. 손으로 짠 옷감과 담요는 두껍고 오래 쓸 수 있었다.
-모험소설 같은 일상생활
시간이 좀 더 지나면서 행상인이 찾아왔고 인구가 늘어 영업이 되자 재빠른 장사꾼이 들어와 잡화상을 열었다.
매매는 물물교환으로 화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고판다는 말은 없고 사람들은 ‘거래 trade’라는 말을 사용했다. 농민은 밀가루, 옥수수, 사과, 베이컨을 가지고 와서 냄비, 유리그릇을 가지고 갔는데 대충 볼티모어나 필라델피아의 세 배 값이었고 외상거래가 성행했다. 장사꾼들은 1년에 두 번 뉴올리언스에 있는 상품을 수로로 수송해오거나 자신이 직접 가져와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서부 사람은 대체로 거칠고 낙관적이며 독립적이었다. 서부에서 평등이란 이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이었고 늘 인디언과 삼림을 상대로 싸우는 일상생활은 모험소설 그대로였다. 이들은 대부분 아내와 몇 개의 의자, 한 권의 성서, 한 자루의 소총을 빼면 순전히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일궈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마을이 발전하고 도시가 들어서며 주가 탄생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 그중 누군가는 치안판사가 되고 또 누구는 군판사가 되며 어떤 사람은 주 의회 의원이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와 무한한 미래의 희망이 생겼다. “다른 나라는 역사서에 의존하지만 아메리카는 예언서에 의존한다”는 말은 서부 정신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문구다. 서부에서는 모든 투기를 허용했고 모든 야망이 합법적이었으며 동화를 실현할 기회가 있었다.
<
신용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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