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A 로턴 ‘워크하우스 아트센터’
▶ 죄수 수용 ‘Workhouse’가 예술가 보금자리 Arts Center로

북쪽 건물 : 워크하우스 예술센터의 북쪽에 있는 건물로 종합전시관이 있고, 회화, 섬유공예, 동양화 등의 분야 예술가가 입주한 곳이다(왼쪽위).워크하우스 예술센터의 남쪽에 있는 건물로 유리, 도자기 분야 예술가가 입주하고, 여러 동작예술 강좌가 이루어지는 곳(오른쪽 위), 건물 기둥 사이를 나무로 막아 작품화시킨 곳.
담배 한 보루로 탄생한 고고 음악의 대부
빨갛게 물든 나뭇잎이 시간의 무게를 담고 자유 낙하하는 계절이다.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폭폭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서 예술과 역사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워싱턴 DC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매우 특별한 곳이 있다. 전에는 죄수를 수용하던 곳(Workhouse)이었는데 지금은 예술가의 보금자리(Arts Center)가 된 곳, ‘교도소에서 예술의 중심(From Prison To Arts Center)’이 된 곳. 다른 말로 하면 ‘신체의 구속’에서 ‘예술의 자유’로 전환된 곳. 버지니아 주의 로턴에 있는 워크하우스 아트센터(Workhouse Arts Center)가 바로 그곳이다.
이 수감시설 출신인 대중음악가가 있는데 척 브라운(Chuck Brown, 1936-2012)이 그 사람이다. 그는 1950년대에 살인죄로 기소되어 6년형을 살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수감 생활하던 중에 담배 한 보루를 주고 기타 한 대를 얻었다. 이것이 그가 고-고음악(Go-Go Music)의 대부가 되는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인생이 내게 레몬을 건넨다면 나는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을 실천한 사람. 인생,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2001년까지 죄수 수감
지금은 아트센터이지만 원래는 워싱턴 DC에서 보낸 죄수들을 수감하는 곳이었다. 1910년 여름에 29명의 죄수가 이곳에 도착하면서 기능을 시작했으니 역사도 상당한 편이다. 그러다가 2001년 11월에 마지막 죄수들을 옮기고 그해 말에 폐쇄되었다.
그 후 이를 매입한 페어팩스카운티의 개조작업을 거쳐 아트센터로 환골탈태하여 2008년 가을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즉 20세기 초에 건설된 죄수 수감시설이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수용시설의 높은 벽을 헐고 탁 트인 예술의 장으로 바뀐 것이다. 버지니아 주에 오래 살아본 사람은 버지니아 123번 지방도로(Ox Rd)를 지나면서 이곳의 높은 벽과 경비초소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술: 아트센터(Arts Center)
전시공간과 공방으로 구성
아트센터는 죄수 수감시설이었던 건물들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각 건물은 기본적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gallery)과 작품을 만드는 공방(studio)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긴 복도가 있고 그 좌우에 공방이 있는 그런 모양인데, 복도 벽에 각 공방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만일 공방의 문이 열려 있다면 비록 그 안에 사람이 없더라도 들어가서 구경해도 된다는 뜻이다.
각 건물마다 회화, 섬유 공예, 동양화, 유리 공예, 도자기 공예, 행위예술 등 각각의 특성을 자랑하며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는 작품을 구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여 작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작업 관련 설비도 만만치 않아서 유리 공예를 하는 곳에는 유리를 녹이는 용융로가 있는가 하면 도자기 공방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한 방을 차지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강좌가 열리고 청소년을 위한 강좌도 많은데, 아트센터 곳곳에 비치된 카탈로그를 살펴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소품으로 카드 판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W-6 건물에 있는 퍼트리셔 라이스(Patricia Rice)의 공방이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에도 이 공방에 있는 작품들은 정말로 멋진데 공짜로 구경하는 게 미안할 정도이다. 그의 공방에 걸린 윌리엄 워드 대장의 초상화 앞에 서면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매력에 압도당하게 된다.
다른 공방 앞의 복도에서 소품으로 판매하는 카드를 들여다보는데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밥 딜런의 글이 적힌 카드가 눈길을 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When you think that you lost everything, you find out you can always lose a little more.(모든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잃어버릴 게 항상 남아 있지요.) Trying To Get Heaven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다.
입주 예술가들
입주 예술가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퍽 재미있는데 최근의 가을 방문에서는 동방정교회의 아이콘(icon, 성화상/聖畵像)을 그리는 네이딘 토라(Nadine Thola)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입주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그녀는 아이콘 제작 과정을 열심히 설명했다.
역시 입주한지 얼마 안된 힐레일 핸드론(Hilaire Henthorne)은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바다의 색깔이 각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내게 깨우쳐주었다.
이 방에는 그녀의 이름을 쓴 혁필화(革筆畵, 가죽조각을 붓처럼 사용해서 그림 같은 글자를 쓰는 것)가 걸려있었는데 그것을 써준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헤어질 때 그녀는 “감사합니다.”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각 건물의 입구에는 안내하는 사람이 있다. 공방에 입주한 예술가 중에서 돌아가면서 맡는 것 같은데, 뭐든 물어보면 친절하고 상세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또 각 건물의 입구에는 노란색 책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 건물에 입주한 예술가들에 관한 정보가 들어있으니까 관심이 가는 작품을 만나면 그 책을 펼쳐서 글로나마 그 작가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

여성 투표권 쟁취를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섰던 루시 번즈. 박물관 벽에 설치된 여성 투표권 쟁취 역사에 관한 자료 모음. 단식투쟁하던 수감자에게 강제급식을 시행하는 것을 마네킹으로 재현해 놓았다.이곳이 한 때는 죄수 수감시설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 도자기 공예 공방에서 작품 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수강생들. 벽에 있는 틈새마저도 예술작품으로 보이는 예술센터. (왼쪽 위부터 시게방향)
역사: 교도소박물관(Prison Museum)
여성 투표권 쟁취의 현장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여기서 질문 하나. 미국 헌법에 의하면 여성은 언제부터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일까? 여기 교도소 박물관에 가면 알 수 있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00년도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여기의 워크하우스가 여성의 투표권을 위한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도.
이 교도소박물관은 W-9 건물에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들어가면서 왼쪽에 있는 방은 구치소 자신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고, 맞은편인 오른쪽 방은 여성 투표권 쟁취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오른쪽 방에 안내인이 상주해있는데 박물관 전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지난여름에 갔을 때에는 관람객이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세 사람 밖에 없었는데 마치 3백 명 앞에서 설명하듯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돋보이는 감동적인 현장이었다.
72명의 여성들, 교도소서 단식투쟁
때는 1917년 초. 전국 여성당(National Woman’s Party) 당원들이 백악관 앞을 포함한 워싱턴 DC에서 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는 시위를 하다가 불법집회 및 교통방해를 이유로 72명이 체포되었는데 대부분 이곳 구치소(Workhouse)에 수감되었다. 그들은 구치소에서 가혹한 대우를 받았고 이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을 전개하였는데 그런 내용들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헌법 개정으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 역사의 현장에 루시 번즈(Lucy Burns)라는 여성이 있는데, 전국 여성당을 만든 사람으로서 여섯 번이나 체포되었고 당시 시위와 관련되어 수감된 사람 중에서 이 구치소에 가장 오래 수감된 사람이다. 워크하우스 아트센터 여러 곳에서 대단한 이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된다.
강제급식 고문
당시 구치소의 가혹행위에 항의하는 전국 여성당 당원들의 단식투쟁에 맞서 당국은 강제급식을 실시했는데, 그 강제급식이라는 것이 사람을 결박한 후 코로 고무관을 넣어 그 끝이 위장에 닿게 하고 그 고무관으로 달걀을 깨서 흘려 넣는 것이었다. 그 과정 중에 코에서 출혈이 있기도 했는데 그 끔찍한 모습이 박물관 한켠에 마네킹으로 재현되어 있다. 이런 희생의 대가로 1919년 수정헌법 제19조에 의해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진 것이다.
2017년은 그들이 항의시위를 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의 자그마한 규모의 박물관을 W-2 건물로 옮겨 2017년 8월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여러 행사가 곧 시작되는데 자세한 것은 www.workhousearts.org/history를 참조하시길.
정기 행사
이 아트센터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기 행사가 두 개가 있다.
아트 워크
매월 두 번째 토요일 저녁 6시부터 9시 사이에는 아트 워크(Art Walk)가 있는데 이때에는 아트센터 곳곳에서 리셉션, 공연 등이 열리고 마실 것도 있다. 이 행사는 인기가 많아서 가족단위로 많이 오는데, 아트센터 앞에 있는 옥스 로드(Ox Rd) 길가에 많은 자동차가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열린 예술의 시간
또 다른 하나는 매월 네 번째 금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사이에 있는 SCAPE(Service member Community Art Partnership & Exchange)의 밤(SCAPE night)이다. W-16 건물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5분간 음악, 시, 코미디 등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열린 마이크(Open Mic), 예술 활동을 하는 아트 이벤트(Art Events), 요가나 춤을 직접 따라해 보는 일단 해봐요(Just Try It Fun)의 세 가지 형식이 있다. 이번 11월과 12월은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때문에 쉬고 내년 1월27일에 열린 마이크가 있다.
역사와 예술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워크하우스 예술센터, 워싱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곳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한 번쯤 들려보기를 권유한다. 워낙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만나게 되어 단 한 번의 방문으로는 충분히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니까 시간을 두고 몇 차례 더 들린다는 생각을 하면 더 좋다. 그러다 마음에 두었던 강좌를 만나면 이참에 등록해서 배우면 더 좋고. 그렇게 우리의 삶과 영혼을 풍성하게 만드는 게 고단한 이민자의 삶에서 휴식을 얻게 되는 방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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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VA,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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