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천개의 탑으로 둘러싸인 세계 3대 불교유적지

‘황금 모래 언덕의 탑’이란 뜻의 쉐지곤 파고다 바간 왕조의 최초 파고다. 지금 탑에 황금을 씌우는 공사 중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서울 인천공항에서 미얀마의 양곤까지 비행기로 약 5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나는 한국의 XX투어 그룹에 합류했지만 비행기 티켓을 미국에서 샀기에 양곤 비행장에서 여행사 투어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그를 만나면 된다는 약속만 믿고 양곤 행 비행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미얀마가 어떤 나라인가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땅덩어리는 남북한 합친 면적의 거의 3배 즉 남한의 6배쯤 된다. 인구는 6천만이라고 하나 아마도 1-2천만은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135개의 종족으로 되어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불교 신자들이다.
국민소득? 미소가 지어진다. 한국 사람들은 195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였다. 그러다가 산업화에 성공하여 배고픔에서 벗어난 후 세계의 찬사 속에 빠르게 중진국이 되었다. 이 자랑스러움을 뻐기고 싶어서인가? 한국 사람들은 여행만 가면 그 나라 GNP가 얼마인가 묻는다. 행복의 잣대가 곧 GNP 지수로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미얀마 국민 소득? 나는 정확히 얼마인지 모른다. 다만 가난하지만 행복들 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다. 그러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들이 GNP와는 무관하게 삶의 행복이 어떠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7명의 인천 보살님들
비행장이 참으로 작고 아담(?)하다.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XX투어라고 팻말을 든 남자가 서 있다. 내가 다가서니 ‘이 선생이시군요. 선생님 말고 7명 모두 여자입니다’ 아이구! 말동무가 될 멋진 여자 하나면 좋으련만 7명이라니, 나는 여복(女福)이 없고 여난(女亂)이 있구나…이런 생각을 하는데 가이드가 말을 이어 간다.
“그런데 일곱분 모두 인천에 있는 절의 보살님들이라고 합니다. 불제자들 성지 순례이지요.” 나는 씨익 웃으면서 속으로 속삭였다. 여난이 아니고 인복(人福)이 있구먼. 좋은 대화의 상대들이 될 것 같으니 말이야.
우리 일행은 비행장에서 호텔로 그리고 다음날 이른 새벽 비행장으로 나가서 바간이라는 곳으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바간은 11세기 소위 최초 통일왕국 바간의 수도이었다. 이 왕국은 몽골족의 한 부류인 버마족이 티벳 히말라야에서 남하하여 세워진 나라이며 그들로 기인하여 미얀마의 말의 어순도 한국인과 같고, 버마족의 후손들은 소위 엉덩이에 몽골반점도 있다.

(오른쪽 위)쉐산도 파고다에서 본 바간. 바간 소개 사진으로 제일 많이 사용된다. (왼쪽)틸로밍고 사원. 우산의 뜻대로 라는 뜻이라 한다. 왕위 계승권 때문에 골치를 앓던 왕이 우산을 던져 떨어진 곳의 왕자가 왕이 되도록 했는데 절묘하게 자기가 원하는 왕자 앞에 떨어졌다 한다. (오른쪽 아래)따가운 햇볕 때문에 나무 열매에서 만든 천연 선 크림이다. 전통 시장을 찾았는데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두 선 크림이다.
차와 식민지의 유습
그런데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무엇인가 좀 어색하여 자세히 관찰하니 차는 우행을 하는데 차 자체는 일본이나 영국처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그리고 차가 서면 승객이 차들이 달리는 아스팔트 차도에 내리거나 타야 했으므로 조수가 달려오는 차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사고방지를 위하며 승객을 내리고 태운다. 그런대 조수를 보니 차가 떠날 때면 승차 계단에 슬리퍼를 얌전히 놓아두고 맨발로 조수석에 앉는다.
나의 호기심, 가이드의 통역, 그리고 조수의 손발 제스처로 나의 이 모든 기이한 행동에 대한 질문에 설명을 들으면서 미얀마 사람들의 행복 지수의 이해가 서서히 열리는 듯 했다.
우선 차의 좌행(左行)은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이었기에 영국처럼 좌행이 되었고, 그 후 폐쇄적인데다가 경제가 나빠서 차를 수입할 처지가 못 되어 있던 중 차를 좌행하는 일본에서 폐차에 가까운 차들을 무상으로 원조해 주는 바람에 좌행 차가 대부분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로 인해서 그 후 중고차를 팔아먹을 시장을 갖게 되었고, 부품장사도 짭짤하다고 한다. 나중에 군부에서 식민지 잔재 청산이라며 차를 우행시키게 했지만 그러나 가난한 미얀마라 아직도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일제 중고가 대부분이다. 물론 기아 차 같은 고급(?) 차가 작년에 2000대가 팔렸고, 부자들은 이제 서서히 운전석 위치가 우리와 같은 차들을 몰기 시작하고 있다.
슬리퍼를 벗은 이유
왜 슬리퍼를 승강 계단에 놓아두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답은 이러하다. 이 버스가 곧 자기의 직장이고 그 직장에 대한 예의의 차원이라고 한다. 운전수는 자기 아저씨뻘 되는데 자기는 그 밑에서 일하면서 배우고 있고 언젠가는 자기도 운전수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곳은 이렇게 운전을 배우고, 또 운전면허 시험도 자기가 차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가족인 아저씨의 도움으로만 가능한 듯 했고, 이곳에 운전사들은 가업처럼 이렇게 끼리끼리 이어져 온 듯하다.
운전수 월급이 약 300달러 정도로 아주 좋은 수입이라고 한다. 자기네들은 양곤에서 약 3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와서 아저씨 집에 기거하는데 이렇게 기거하다 떠나고 또 오고 십년간 30명쯤이 된단다. 그저 집구석 아무 곳에서 자고, 밥만 있으면 반찬이라야 짠지 하나면 되니 뭐 그리 주인아저씨도 또 찾아오는 일가친척도 부담 없단다. 그들의 행복 지수를 이해하기 시작된 듯하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
전두환 대통령이 방문 했을 때 사용하던 터미널은 이제 국내선 터미널이 되었다. 바간 행 비행기에 타기 전에 안전을 위하여 기도하고 시주하라고 하는 불상을 지나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비행기에 타니 남자 승무원의 머리가 젤을 바르고 삐죽 삐죽하다. 내가 스타일이 좋다고 하니 싱긋 웃으며 코리아 힙합댄서들 흉내 낸 것이라고 한다.
가이드가 한 마디 보탠다. 약 14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가 미얀마 안방을 휩쓰는데 특히 드라마가 말을 더빙한 것이 아니라 한국말이 그대로 나오고 화면 아래쪽에 미얀마 자막이 나오니까 다시 말해서 14년 동안 매일 한국말을 들어 왔으니 대화를 할 능력은 못 되도 욕 하는 것은 다 알아들으니 말조심해야 한단다.
황금 대탑에서
바간에 도착했다. 1044년에 아나우라타의가 일으킨 바간 왕국의 수도이다. 본래 인도에서 힌두교 세력에 밀려 남쪽으로 남하 오늘의 스리랑카에서 시작된 소승불교가 미얀마에 상륙하여 남쪽에 있던 본족이 미얀마의 문화와 종교의 중심이었으나 북쪽에 버마족이 무력으로 몬족의 타톤 왕국을 멸망시키어 버마 국토 통일을 한 것이다. 통일 후 물론 종교의 중심으로 또 문화에 중심으로 13세기 몽고에게 멸망 당하기전까지 융성했던 곳이다.
한 프랑스 학자가 조사한 바로는 현재 약 5,000개의 탑이 있고, 과거에는 4만개가 있었다 하는데 그 숫자가 어찌되었던 온통 탑으로 싸인 바간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보두르와 함께 불교 3대 유적지로 유네스코에 등재 되어 있다고 한다.
황금대탑으로 불리는 쉐지곤 파고다, 왕위 다툼의 일화를 남긴 ‘우산 마음대로‘라는 힐로밍로 사원, 버마족이 쳐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뷰족의 뷰 파고다, 남파야 힌두교 사원, 몬족의 타톤 왕국의 왕이 포로로 잡혀 있었던 마누아 사원, 그리고 가장 아름답다는 아난다 사원 등 너무나 볼거리가 많았지만 또 하나의 앙코르 와트 같은 쉐난도 사원에서 저녁때에 내려다 본 바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평온한 눈동자들
그러나 잠자리에서 내 기억에 지어질수 없는 눈동자가 자꾸 떠올랐다. 그 눈동자의 주인공들은 파고다 불상 앞에 마치 피크닉을 온 것 같이 식구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내가 인도에서 본 가난한 사람들 눈동자하고는 아주 달랐다. 인도의 걸인은 ‘내가 있기에 너희가 자비를 베풀 수 있지 않느냐’ 하면서 건방진 눈동자이었다. 그리고 대 저택 담 밑에 햇빛을 가리는 천막 밑에 사는 걸인의 눈은 체념의 눈동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불상 앞에 그들은 정말 평온한 눈동자이었다. 행복지수? 그들은 그 말 자체를 모를 것이다. 그런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행복이 될 수 없다고 생각들 할 것이다.
저녁에 식당을 찾았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일행 8명, 가이드, 운전수 포함해 10명이었다. 밥 먹는 한 시간 넘게 열 댓 명 정도의 무희, 음악 연주자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내가 가이드에게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얼마 받고 춤을 추고 있느냐 물으니 아마도 한 달에 약 30불 정도가 될 것이라 한다.
“그들은 그들이 얼마 받는지 그것을 그리 따지지 않아요. 그냥 주는 대로 받지요. 어찌됐든 밥과 짠지는 있으니까요.”
그들 역시 평온한 눈동자이다. 무기력한가, 불교의 윤회 사상 때문 일까? 이유가 어찌되던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평온했다. 이것이 내가 바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것이다. <다음에 계속>
<
이영묵 전 워싱턴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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