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북해도 여행 중 카이세키(일본 전통 코스요리) 식사를 즐기고 있는 한인 여행자들.
70대 중반에 떠나는 기차여행
워싱턴문인회장을 지낸 이영묵 씨는 새해에 색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750달러를 내고 한달 동안 미 전국을 도는 기차여행을 떠난다는 계획이다. 워싱턴에서 출발해 시카고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를 거쳐 다시 미 남부 도시들을 순회하며 동부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최대 한달 이내에 12개 역에서 내릴 수 있으며 며칠씩 관광을 하다 아무 때나 다시 기차를 타면 되는 기차여행권이다.
“내 나이가 75세인데 더 늦기 전에 이색여행을 한번 떠나보려고 해요. 홀가분하게 책이나 몇 권 가지고 산천 구경하면서 낯선 도시에 들러 풍광도 둘러보고 마음 내키면 며칠 자면서 찬찬히 즐기는 거지요. 저한테는 도전에 가까운 여행이지요.”
이 전 회장은 평소에도 인터넷을 통해 저가로 나온 크루즈 여행이나 유럽여행 상품정보를 찾아 다녀오는 신 여행족이다.

한인들이 잘 가지 않는 부탄을 찾아 탁상 사원 앞에 선 여행객들.
이민 1세대들의 은퇴
워싱턴 한인들의 여가생활과 레저 문화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주말 산행을 즐기거나 여행사들이 내놓은 엇비슷한 여행상품들을 쫓아다니는 천편일률적인 유형에서 다양하고, 전문적이며, 진취적인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한인사회에는 제대로 된 레저 문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이민 온 1세대들은 미국 정착에 몰두하느라 여가생활이란 말조차 사치로 여길 정도였다. 여가를 즐길 시간과 돈도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민 1세대들이 은퇴기에 접어들면서 한인사회에도 레저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수십 년의 이민생활 동안 쌓은 재력에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겹치면서 자연과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인터넷,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의 보급으로 필요한 여행이나 레저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점도 변화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한국에서부터 불어온 의식의 변화도 이 같은 변화에 한몫하고 있다. 레저문화가 없던 1960-80년대 당시 한국에 거주하다 미국에 이민 온 만큼 대다수 한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는 여가생활을 즐길 줄 몰랐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90년대부터 레저문화가 꽃을 피우고 어떻게 놀 줄을 아는 세대들이 미국에 이민 오면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 신문 등 미디어를 통해 보다 많은 여행과 레저 정보를 접하게 된 것도 의식의 전환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해 완주한 메릴랜드의 한인 여성들.
등산과 취미동호회 수백 개나
이에 따라 다양한 취미 동호회들이 생겨났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등산모임 2개가 고작이었던 취미와 여가 동호회는 현재 수백 개에 달할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달라졌다.
대표적인 변화상은 등산 동호회의 급격한 팽창이다. 1991년 워싱톤한인산악회를 시초로 등산 동호회는 명맥을 유지해오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하고 있다. 현재 워싱턴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식 한인산악회 수는 토요, 산울림, 산사랑산악회 등 약 20여개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10인 이하의 지인들로 구성된 소규모 산행모임 등을 더하면 50여개가 넘을 것이라고 산악인들은 입을 모은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있는 한인들.
산사랑산악회의 박공석 회장(박공석 척추신경 원장)은 “요새는 10명 이상 대규모로 산행을 하는 산악회 대신에 마음에 맞는 지인들 4-6명 규모로 산을 찾는 게 유행으로 이런 등산 소모임만 해도 30개는 될 것”이라며 “주말마다 움직이는 한인 등산객이 500-1천 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등산 열기로 인해 주말이면 셰넌도어 국립공원 등 워싱턴 인근의 산들은 한인 등산객들로 붐빈다. 얼마 전에는 산악인 토론회도 처음 열려 내년부터 산악문화 축제 같은 합동 대규모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모터사이클에 헬리콥터 동호회도
등산뿐만 아니다. 종전에는 하나도 없던 마라톤 클럽도 몇 개가 생겨 매주 정기 달리기 모임을 갖고 있다. 메릴랜드의 센테니얼 마라톤클럽 소속 한인 엄마들과 남성들은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해 500미터 수영, 16마일의 바이킹, 5킬로미터 마라톤을 연이어 달리며 건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뽐내기도 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워싱턴 지부의 사진강좌가 열리고 있다.
소규모 골프 동우회도 수십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동우회를 결성해 골프장 정보도 얻고 친목도 도모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것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조기축구회가 대세였다면 요즘은 등산과 골프가 한인들의 주말 여가생활의 대세가 됐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카메라도 더 친숙해졌다.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워싱턴 지부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진동호회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회원만도 100여명으로 집계된다. 또 각 교회 부설 시니어문화센터에서는 사진 강좌도 활발하게 열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밖에도 스킨 스쿠버 클럽도 생겨났으며 할리데이비슨 보유자들로 구성된 모터사이클 클럽에 심지어 모형 헬리콥터 동호회도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에는 메릴랜드 한인들이 주축이 된 ‘파탑스코 산악자전거(MTB) 동호회도 창립돼 회원 모집 등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관람은 끝, 참여하는 여행
취미와 여가생활의 근본적인 변화상 외에도 여행 트렌드도 대폭 바뀌었다. 사실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 내 여행은 뉴욕과 나이아가라, 스모키 마운틴, 서부와 라스베이거스 등이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해외여행도 캐나다 록키와 중미, 남미, 서유럽 등 천편일률적인 여행 코스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야말로 유명 관광지를 가이드만 쫓아다니는 전통적인 ‘관람형’ 여행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여행 패턴이 점점 변화하고 있다. 짜인 여행 일정보다는 본인들이 정보를 찾아 입맛에 맞는 맞춤형 여행을 선호하고 제대로 즐기자는 자연과 문화 체험형 관광, 정적인 관광에서 ‘개고생’도 마다않는 동적인 관광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정착하고 있다.
한스관광의 조앤 한 사장은 “최근 몇 년 동안 40명, 50명 단위의 큰 그룹 여행보다 아는 분들끼리 1년 동안 돈을 모아 함께 하는 소규모 여행 단체가 많이 늘었다”면서 “원래 짜인 일정보다는 본인들이 가고 싶은 곳들을 골라 주문하는 맞춤여행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여행 문화의 변화상을 소개했다.

중동의 유서 깊은 나라, 이란을 찾은 한인 여행자들이 히잡을 쓰고 있다.
한 사장은 이어 “또다른 눈에 띄는 변화는 이제 한인들의 여행지역도 한층 더 다양해져 남들과 다른 새로운 지역을 경험하기 원하시는 분들이 쿠바나 이란, 부탄 등 지금까지 없었던 지역으로의 여행 신청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예전에 가이드를 따라 다니면서 설명을 듣고 보고 오는 소극적인 여행에서 이제는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쿠바에서 유명한 살사 댄스를 배우고 이란 현지인들과의 만나는 시간, 그리고 5일에서 길게는 40일까지 걸으면서 여행하는 순례길 여행, 전문적인 산악인이 아니라도 네팔과 부탄에서는 트레킹에 참여하는 등 직접 경험을 즐기는 여행으로 그 수준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사들도 이색상품 개발 앞장
이 같은 여행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워싱턴 지역의 한인여행사들은 새로운 상품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탑 여행사는 2월에 떠나는 캐나다 휘슬러 스키장 투어 프로그램을 내놓았는데 스키 투어와 강습은 물론 온천까지 즐기는 럭셔리 상품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로의 환상적인 빙하여행 같은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상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야외 레저문화를 선도하는 탑 아웃도어스 클럽을 창립해 워싱턴 최초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고 중국 차마고도 트레킹 등 모험적이고 낯선 세계로 한인들을 이끌고 있다.
이 ‘거친’ 여행에는 70대 한인들도 서슴없이 참가해 도전정신을 떨쳤다.
선 여행사는 일찌감치 새로운 기획상품을 선보이는 등 발 빠르게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알래스카의 오로라와 성원 눈꽃 기차여행 상품을 내놓았고 설원의 록키와 포트 맥머리 오로라를 즐기는 상품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또 멕시코 동부 캔쿤과 마야의 역사와 전통 먹거리를 찾는 5박6일의 버스여행 상품에다가 캔쿤에서의 골프대회도 준비하고 있어 겨울 골퍼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한스관광은 내년 3월에 ‘노아의 방주를 찾아서’란 제목의 켄터키, 테네시 버스 투어를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로는 일본 전통 맛과 온천을 찾아 떠나는 이색상품과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찾아 떠나는 이란여행 상품,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기독교 성지순례 같은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아 호평을 받고 있다.
탑아웃도어스클럽을 이끌고 있는 김남일 본부장(2003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장)은 앞으로의 레저문화 추세에 대해 “한인들의 의식도 변해서 앞으로는 레저와 여행의 즐거움을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찾는 추세가 강화될 것”이라며 “시간에 쫓기는 방식이 아닌 여유를 찾고, 눈요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며, 음식이 보조가 아닌 대세가 되고 특히 여행과 레저가 결합되는 융합문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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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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