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는 딸의 집에 사는 개 이름이다. 가장 큰 애완용 개인 독일계 종자 그레이트 데인으로 체중이 200파운드가 넘는 6살 난 수컷이다. 훤칠한 키에 잿빛 털을 가진 우아하고 늠름한 생김새가 사람으로 치면 귀족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알버트는 항상 외롭다. 가족 중 누구 하나 그에게 관심을 갖고 놀아 주는 사람이 없다. 딸과 사위는 직장 때문에 바쁘고, 손자들은 어렸을 땐 알버트가 너무 덩치가 커서 접근을 피하더니 중학생이 되자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러니 그 큰 녀석은 똥오줌 누러 밖에 나가는 것 말고는 대부분 집안에 갇혀 산다. 동네 아이들이 밖에서 노는 것을 보면 분노의 표현일까, 가끔 벽이나 창문 밖에 대고 방안이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짖어댄다. 방안에 널려있는 인형과 공을 가지고 혼자 놀다 지치면 자기자리로 돌아가 잠만 잔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수심이 가득하고 두 눈망울에는 그리움이 젖어 있다.
내가 딸네 집에 가면 알버트는 두 앞발을 쳐들고 반갑게 맞는다. 한 두번은 그 녀석 발에 채여 고생도 했지만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함께 놀아준다. 그러면 그렇게 좋아한다. 수심 가득했던 얼굴에 웃음기가 돌고 두 눈망울에 생기가 넘쳐 난다.
인간은 놀이를 좋아한다고 흔히 호모 루덴스로 부른다. 놀이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맺고, 문화와 문명을 발달시켰다고 한다. 야생 동물의 피가 흐르는 애완용 개에게는 더더구나 놀이가 신체적 정서적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놀이는 또한 동물들이 어렸을 때 자기를 돌보는 어미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활동과정의 하나다. 알버트가 혼자 노는 것을 보면 6살 중년 개가 아니라 꼭 1살 된 강아지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 관심과 애정 결핍 때문일 것이다.
한 달 전에 내린 첫눈은 솜털 눈, 싸락눈이라서 대지에 닿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렸는데 어제 밤부터 총각 농사꾼 손바닥 같은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밤사이에 온 대지가 눈꽃 밭으로 변했다. 겨울밤 세찬 바람에 날린 조그마한 눈덩이들이 앞 뒤뜰의 나목들 가지가지에 얹혀 눈꽃을 피워냈다.
문득 바위 틈새로 가느다란 풀 한포기가 온통 하얀 대지 위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나를 보아달라고, 아니 나를 보지 않고는 가지 못한다고 항의하는 듯싶다. 관심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면 지구촌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고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혼자서 살아가기는 힘들다. 집단 속에서 서로 기대고 부대끼며 살아간다. 서로 서로 관심과 놀이를 통해 인간답게, 동식물답게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나 집단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잊어버린 낙오자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
정보 영상의 홍수 속에서 시간에 쫓겨 바쁘고, 생활에 찌들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여유 없는 삶에 파묻히고 만다. 어려운 사람을 돕다가는 행여 손해를 볼까봐 모른 체하는 세상풍조에 쉽게 적응한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낙오되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긍정적인 관심은 덕과 선을 행하는 지름길이다. 반면 무관심의 삶은 경쟁에서의 낙오자는 아닐지 몰라도 인생의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나치 수용소 생존자 엘리 위젤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다. 그것은 무관심이다.”라고 호소했다. 또 영국의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은 “무관심의 안락함에 상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제 새해를 맞아 동물적 쾌감과 편리주의 추구에서 조금 벗어나 관심의 폭을 넓혀보자. 내 집에서 내 동네로, 내 동네에서 내 지역사회, 나라, 세계, 우주로 나가 보자. 사람과의 관심, 관계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과도 연결고리를 맺자.
모든 대상을 관심어린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면 기독교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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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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