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바스찬 왕(오른쪽).
겨울 학기를 마무리 하는 지난해 11월의 마지막 날 칼리지 파크의 메릴랜드대 음대 공연장. 미국 학생들의 흥겨운 사물놀이 공연이 펼쳐졌다. ‘덩더쿵 쿵덕’ 학생들의 어설픈 실력에도 관객들은 한국의 가락에 흥겨워 어깨를 들썩이며 연신 박수갈채를 보낸다. 메릴랜드 대학의 사물놀이 수업 기말고사 대체 공연이었던 이 무대를 만든 사람은 세바스찬 왕(32) 강사. 바로 이 대학에서 8년째 사물놀이를 가르치고 있는 한인 혼혈청년이다. 적막한 겨울 밤, 음악대학의 좁은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왕 강사를 만나 한국의 소리에 대한 그의 열정을 들어봤다.
6살 때 공연보고 흠뻑 빠져
미 대학 진학마저 포기하고
한국예종서 김덕수 명인 사사
UMD서 사물놀이 수업 개설
8년간 학생 200명 지도
미국의 대학 중 사물놀이를 정규 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는 대학은 극히 드물다. 한국에서 사물놀이의 대가 김덕수 명인에게 사물놀이를 배우고 메릴랜드로 돌아온 왕 강사는 2008년 사물놀이를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며 메릴랜드 음대의 문을 두들겨 1학점짜리 수업을 개설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8년간 이 수업을 들은 학생은 200여명이 넘는다. 매 학기 15-20여명의 수강생이 한국말로 우리의 가락을 배우며 악기 연주법을 배운다. 학기 말에는 학생들의 지인들을 초대해 기말고사를 대체하는 공연도 연다.
“한국의 추임새를 배우고 리듬을 느끼면서 한국을 배우는 거죠. 수강생들은 공연을 통해 자신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관객들은 사물놀이가 뭔지 알게 되는 거죠. 공연 때 항상 사물놀이는 서양의 공연과 달리 공연 중 박수도 치고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해줘요. 그럼 관객들이 공연 내내 어깨를 들썩이며 느낌을 표현해요. 공연을 즐기는 거죠.”
엄마 손 잡고 간 영화축제
세바스찬 왕 강사는 사물놀이에 빠진 것이 운명 같았다고 말했다.
“6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열린 영화축제를 갔다가 처음으로 사물놀이 공연을 봤어요. 완전히 빠져들었죠. 사물놀이 팀이 메릴랜드 대학의 학생들이란 것을 알게 됐고 엄마를 졸라 매주 금요일 그 팀의 연습을 구경갔어요.”
어린 시절부터 사물놀이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지만 직접 배우기 시작한 건 14살부터다.
“사물놀이 팀의 리더가 한국으로 가는 바람에 사물놀이를 배울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제가 14살 되던 해 그분이 메릴랜드로 돌아와서 그 때부터 사물놀이를 배웠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미친 듯이 연습했죠.”
사물놀이를 업으로는 생각하고 있지 않던 왕 강사에게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에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우연한 계기가 찾아왔다. 당시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에서 열린 첼리스트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 팀원으로 공연을 왔던 김덕수 명인의 제자인 장구 연주자 김동원 교수를 만난 것이다.
“김동원 선생님을 메릴랜드의 제 집으로 초대해서 제가 갈고 닦은 실력을 모두 보여드렸어요. 그랬더니 김 선생님께서 한국의 김덕수 선생님께 전화해 저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김덕수 선생님께서 한국으로 와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라고 권하셨어요.”
그 말 한마디에 세바스찬 왕은 미국 대학의 입학을 모두 취소하고 한국으로 가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02학번으로 입학했다. 이 학과의 첫 외국인 학생이었다. 왕 강사는 한예종에서 한국의 소리에 대해 다양하고 깊이 있게 배웠지만 언어와 문화의 벽 때문에 적응하는데 힘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흥, 에너지 솟아나
세바스찬 왕 강사는 사물놀이의 매력은 ‘매우 한국적인 것’이라 했다.
“사물놀이를 하면 한국의 정신이 살아나고, 한국의 흥이 느껴지니까 한국의 에너지가 내면에서 저절로 솟아납니다. K팝도 좋지만 K팝을 완전한 한국의 것이라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사물놀이는 진짜 한국적이에요. 저는 그래서 한인 2세들이 사물놀이를 많이 배우고 정체성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래요.”
그동안 워싱턴한국문화원 등에서도 사물놀이를 지도하고 여러 미 주류사회 행사에서 한국의 소리를 알려온 그에게는 꿈이 있다. 사물놀이를 미국에 더 많이 알려 미국인들에게 더 사랑받게 하는 것이다.
“사물놀이를 본 미국인들은 모두 재미있어 하고 좋아해요. 사물놀이는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의 세계가 될 수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사물놀이를 가르치며 사물놀이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또 현재 이끌고 있는 전문 공연팀인 ‘워싱턴 사물놀이’를 통해 많은 공연도 선보이고, 사물놀이를 직접 하는 제자도 많이 키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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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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